지난달 28일 판교-구리간 고속도로 구리인터체인지옆에선 농수산물도매
시장 기공식이 있었다.

이영덕국무총리와 최인기농림수산부장관이 첫삽을 떴다. 그러나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중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이 당초 계획발표후 1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것도 "번지수"를 바꿔 착공된 것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총리도 최장관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장은 정확히 말해 12년전 계획
됐었다.

당시 농림수산부와 서울시는 수도권을 동서남북으로 나눠 4개권역에
농수산물도매시장을 각각 개설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었다.

그리고 나서 3년뒤 동남권에 가락동시장이 개장됐을 뿐이다. 신정동에
짓기로 돼있던 서남권 시장과 구파발로 정한 서북권 시장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구리시장도 원래 창동에 세우려던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질질 끌다 지난
90년에야 구리시로 계획이 변경됐다.

계획이 바뀌고도 또 4년을 더 끌어서야 삽질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이렇게 발표만 요란하고 시행은 지지부진한게 많다.
장미빛 청사진만 있었지 그게 결실을 맺도록 챙기는건 약하다.

정책을 상품으로 치면 광고는 그럴듯 했지만 정작 내놓는 상품은 "비지떡"
이란 얘기다.

최근들어서도 거창하게 발표만 해놓고 흐지부지되는 용두사미 정책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2000년대 세계10위권의 항공산업국으로 도약. 중형항공기 98년 개발완료.
이후 장거리용 대형여객기 국제공동개발에 참여".

상공자원부가 작년3월 "항공산업전략방안"에서 밝힌 포부다. 관련업계의
기대를 잔뜩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목표달성을 위한 계획추진일정도 꽤 꼼꼼히 짜여져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계획은 1년3개월이 지난 지금, "과대과장 광고"의 전형처럼 돼
있다.

우선 지난해 6월까지 확정키로 했던 항공산업 세계10위권 진입 세부시행
방안은 1년이 지났는데도 초안 하나 찾아볼수 없다.

국방부 체신부 교통부 과기처등 관계부처들의 항공관련 사업조정을 위해
당초 설치키로 했던 대통령직속의 가칭 항공우주산업기획단은 정부조직축소
에 밀려 물거품이 됐다.

항공산업육성을 위한 1조6천억원의 기술개발기금조성도 ''립 서비스''로
그쳤다.

항공관련 연구소의 통합계획은 백지화된지 오래다. "정부가 98년까지 국산
중형항공기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는 세워놨지만 개발주체선정등 계획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과연 개발목표달성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럽다"(S항공
A부장).

발표대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도 애프터서비스가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문민정부들어 대대적으로 선전된 규제완화에 그런 사례가 많다.

작년7월 단행한 수출절차에 관한 규제완화건을 들여다 보자. 정부는 일람불
L/C(수출신용장)에 의한 2만달러이하의 수출에 대해선 은행의 수출승인절차
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실제로 이제도는 1년 가까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절차간소화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수출기업은 거의 없다.

이유는 이렇다. "은행에서 수출승인만 면제해주면 뭐 합니까. 세관에서
통관이나 관세환급때 수출승인보다 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요.
차라리 그전엔 은행의 수출승인서만 있으면 세관은 무사통과였습니다. 은행
의 수출승인이 세관신고로 대체된거죠. 오히려 은행의 수출승인이 수월해
2만달러이하라도 일반수출승인을 받고 있습니다"(K무역 S대표)

작년9월 금융실명제 지방설명회를 돌던 홍재형재무부장관에게 대전의 어떤
업체대표가 건의한 내용도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장관의 말보다 은행 대리의 말을 더 듣고 싶다. 장관은 이것저것
지원해 준다지만 은행창구에선 움직이질 않는다".

위에선 "이렇게"하라고 했는데 아래선 "저렇게"한다. 이게 한국의 정책이요
정책애프터서비스인지도 모른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제관료들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한 중앙부처가 실제 집행을 맡은 시.도나 외청등을 제대로
제어할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앙부처가 일선기관의 정책 집행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중앙에서 시달된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를 점검.
평가하고 이것이 다시 중앙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Feed Back)
과정이 정착될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노동부 L국장).

사실 일본이나 유럽에선 지방에 특별관청을 둬 일선행정기관의 정책집행을
관장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이런 관청을 두면 또 옥상옥이 될수도 있겠지만 정책애프터
서비스를 위해선 뭔가 수를 써야 할때다.

발표만을 위한 정책을 막기 위해선 정책의 심사분석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분기마다 총리실에서 발표된 정책들의 심사분석을 하고는 있지만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게 사실입니다. 예산이 집행돼 실적이 숫자로 나오는
경우를 빼고는 대개가 부처 스스로 보고서를 올리죠. 자기부에서 내놓은
정책이 잘못돼 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정책추진
이상무"가 대부분이죠"(경제기획원Y국장).

어쨌든 애프터서비스가 부족한 상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 마련
이다.

사후관리가 미흡한 정책은 국민과 기업의 불신을 살수 밖에 없다. 소비자
없는 상품없듯이 국민이나 기업들이 믿지 못하는 정책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수 있을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