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주역 30대사장] (1) 조규백 <인터프로시스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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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있는 젊은 기업인들이 2천년대를 향해 뛴다. 두주먹 패기에다 새로운
경영패턴으로 도전한다. 이들은 대부분 한때 샐러리맨이었다. 이들의
탈샐러리맨은 쉽지 않았다. 30대사장들의 좌절과 꿈을 캐본다.
< 편 집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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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공조기컨트롤러 전문생산업체인 인터프로시스템의 조규백사장(37)은
요즘 몸이 2개여도 모자란다. 지난 90년부터 손대기 시작해 지난3년동안
겨우 연 1백~2백개정도 팔리던 컨트롤러가 올들어선 반년만에 3만여개나
팔려나간 것이다. 별안간 찾아온 성과에 그는 사무실 공장 거래처를
번갈아 뛰어 다니기에 바쁘다.
부천시 심곡2동에 있는 공장을 증설했다. 서울 여의도 신화빌딩2층에
사무자동화시스템을 갖춘 정갈한 사무실을 갖게 되면서부터 이제야
성장기업의 사장이 됐음을 스스로 느낀다. 샐러리맨생활을 청산한지
꼭 5년만에 얻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조사장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이달중에 첨단 모니터링시스템을
개발해내기 위해 공장에서 기술자들과 함께 땀을 쏟는다. 2천년대에는
세계최고의 컨트롤러생산업체가 되겠다는 패기에 차있다.
조사장이 항상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4월10일. 서른두살의 젊은 나이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험하다는 기업인의 길을 택했다. 4명의 종업원으로 서울 마포 성지오피스텔
13층에 인터프로시스템이란 회사간판을 걸었다.
창업을 한 뒤 일단 컴퓨터주변기기와 반도체제조장비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었으나 기술개발비 이외에도 한달유지비가 5백만원씩 들어가는
바람에 도저히 소요자금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고 조사장은 창업초기를
술회한다.
하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컴퓨터대리점업으로 연명했다. 이것 마저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기업인이 되겠다는 꿈이
물거품이 되려 할 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컨트롤러사업에 손을 대게 된다.
"컴퓨터주변기기를 팔러 경기 이천에 있는 아진산업을 찾아갔죠.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니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경쟁사에서 더 낮은 가격에
납품계약을 맺은 뒤였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담배나 한대피우고 가기로 마음먹고 당시 구매과장에게
차한잔만 얻어 먹고가자고 요청한 것이 뜻밖에 컨트롤러사업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진산업의 구매과장은 이 자리에서 냉동기컨트롤러를 개발해주면 납품을
받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다른 회사에 일본의 히타치수준의 컨트롤러를 국산화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대원전선등에서 5년간 경험을 쌓아온 그에게 이 제안은 너무나 솔깃
했다. 조사장은 그 자리에서 개발해주겠다고 승락했다.
개발비위탁비는 3천만원으로 책정됐다. 이중 9백만원을 선수금으로
받았다. 약속한 개발기간은 3개월.
그러나 겨우 6개월만에 컨트롤러를 개발하긴 했으나 필드테스트에서 에러
가 계속 발생하는 바람에 또 다시 쓴맛을 봐야했다. 1년가까이 부천공장
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샌 뒤에야 컴퓨터칩이 내장된 첨단냉동기컨트롤러를
개발해냈다.
첫 작품이 완성된 날 조사장은 개발팀과 함께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개발이 끝나자 일이 잘풀리기 시작했다. 손쉽게 정책자금을
타냈다.
항온항습기를 비롯 카쿨러 스크류냉동기등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컴퓨터화
된 컨트롤러를 선호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조사장은 올해 적어도 8만대
의 냉동공조컨트롤러를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곧 마이크로프로세서응용기기도 개발해낼 계획이다. 스크류냉동기
서모스태트등첨단 냉동공조제어기도 상품화한다.
싱가포르공조기업체들이 인터프로시스템의 제품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
하고 있어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등 선진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 미국및 EU의 공조기업체들이 인터프로와 독점계약을
맺을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용기있는 젊은 기업인들이 2천년대를 향해 뛴다. 두주먹 패기에다 새로운
경영패턴으로 도전한다. 이들은 대부분 한때 샐러리맨이었다. 이들의
탈샐러리맨은 쉽지 않았다. 30대사장들의 좌절과 꿈을 캐본다.
< 편 집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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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공조기컨트롤러 전문생산업체인 인터프로시스템의 조규백사장(37)은
요즘 몸이 2개여도 모자란다. 지난 90년부터 손대기 시작해 지난3년동안
겨우 연 1백~2백개정도 팔리던 컨트롤러가 올들어선 반년만에 3만여개나
팔려나간 것이다. 별안간 찾아온 성과에 그는 사무실 공장 거래처를
번갈아 뛰어 다니기에 바쁘다.
부천시 심곡2동에 있는 공장을 증설했다. 서울 여의도 신화빌딩2층에
사무자동화시스템을 갖춘 정갈한 사무실을 갖게 되면서부터 이제야
성장기업의 사장이 됐음을 스스로 느낀다. 샐러리맨생활을 청산한지
꼭 5년만에 얻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조사장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이달중에 첨단 모니터링시스템을
개발해내기 위해 공장에서 기술자들과 함께 땀을 쏟는다. 2천년대에는
세계최고의 컨트롤러생산업체가 되겠다는 패기에 차있다.
조사장이 항상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그가 처음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 4월10일. 서른두살의 젊은 나이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험하다는 기업인의 길을 택했다. 4명의 종업원으로 서울 마포 성지오피스텔
13층에 인터프로시스템이란 회사간판을 걸었다.
창업을 한 뒤 일단 컴퓨터주변기기와 반도체제조장비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이었으나 기술개발비 이외에도 한달유지비가 5백만원씩 들어가는
바람에 도저히 소요자금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고 조사장은 창업초기를
술회한다.
하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컴퓨터대리점업으로 연명했다. 이것 마저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기업인이 되겠다는 꿈이
물거품이 되려 할 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컨트롤러사업에 손을 대게 된다.
"컴퓨터주변기기를 팔러 경기 이천에 있는 아진산업을 찾아갔죠.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니 때는 이미 늦었더군요. 경쟁사에서 더 낮은 가격에
납품계약을 맺은 뒤였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담배나 한대피우고 가기로 마음먹고 당시 구매과장에게
차한잔만 얻어 먹고가자고 요청한 것이 뜻밖에 컨트롤러사업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진산업의 구매과장은 이 자리에서 냉동기컨트롤러를 개발해주면 납품을
받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다른 회사에 일본의 히타치수준의 컨트롤러를 국산화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대원전선등에서 5년간 경험을 쌓아온 그에게 이 제안은 너무나 솔깃
했다. 조사장은 그 자리에서 개발해주겠다고 승락했다.
개발비위탁비는 3천만원으로 책정됐다. 이중 9백만원을 선수금으로
받았다. 약속한 개발기간은 3개월.
그러나 겨우 6개월만에 컨트롤러를 개발하긴 했으나 필드테스트에서 에러
가 계속 발생하는 바람에 또 다시 쓴맛을 봐야했다. 1년가까이 부천공장
에서 뜬 눈으로 밤을 샌 뒤에야 컴퓨터칩이 내장된 첨단냉동기컨트롤러를
개발해냈다.
첫 작품이 완성된 날 조사장은 개발팀과 함께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개발이 끝나자 일이 잘풀리기 시작했다. 손쉽게 정책자금을
타냈다.
항온항습기를 비롯 카쿨러 스크류냉동기등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컴퓨터화
된 컨트롤러를 선호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조사장은 올해 적어도 8만대
의 냉동공조컨트롤러를 납품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곧 마이크로프로세서응용기기도 개발해낼 계획이다. 스크류냉동기
서모스태트등첨단 냉동공조제어기도 상품화한다.
싱가포르공조기업체들이 인터프로시스템의 제품을 공급해줄 것을 요청
하고 있어 눈을 해외로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등 선진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 미국및 EU의 공조기업체들이 인터프로와 독점계약을
맺을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