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민간기업의 샐러리맨이나 부름직한 이 말이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도 서슴없이 입에 오른다. "우리부" "우리청"대신 "우리 회사"다.

장관이나 청장은 물론 "사장님"으로 둔갑한다. 관청을 회사로. 민간에 대한
"시뮬레이션 심리"가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상대하고 접촉하는 계층이 민간
기업인들인 만큼 자신들의 근무처를 "회사"로 상정해 놓고 민간기업과 이런
저런 비교를 해보게 되는 건 아닐까.

보사부 K과장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우리 회사요? 신분보장이 확실한게
큰 메리트지요. 눈치볼 오너가 없고 새로 온 사장(장관)눈에 나봤자 큰
문제가 있을게 있나요. 기껏해야 한 2년이면 사장 자신이 바뀔텐데요.
이만치 배짱편한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박봉이 흠이지만..."

공무원생활 20년가까이 한 그는 "민간기업을 선택했다면 지금쯤 임원이
됐어도 벌써 됐겠지만 파리목숨이라는 기업임원보다 이 자리가 더 낫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구구절절이 맞는 얘기다. 검증의 여지가 있는 "박봉론"만 빼고는. 우선
박봉론부터 뒤집어 들어가 보자.

5년이상 20년미만, 그중 서기관급이하 공무원들에겐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예컨대 근무연수 17년차 서기관(4급)이 연4백%의 보너스
를 합산해 받는 한달평균 급여는 2백39만원이다.

같은 연배면 민간기업에선 이사대우자리에 올라있다. 17년차 L그룹 이사대
우의 월평균봉급은 4백만원이 조금 넘는다. 확실히 박봉이다.

그러나 "5년이상 20년미만 박봉 존(zone)"밖에선 해당무다. 예컨대 고시를
갓 패스한 초임사무관. 그들의 월평균급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대졸신입
사원 급여보다 한참 많다.

기본급 58만1천원, 정보비 15만원, 급량비 5만원, 시간외 근무수당 5만원
에 부양가족 1인당 1만5천원인 가족수당이 매달 지급된다.

여기에 기본급기준으로 1백%의 상여금이 1년에 네번 지급된다. 기본급의
50%로 계산되는 정근수당이 1월과 7월 두번 나온다.

연봉으로 따지면 1천3백23만7천원. 월평균 급여는 1백10만3천원이다. 반면
국내기업중 봉급이 최고수준이라는 L그룹의 대졸신입사원은 연7백%의
보너스와 이런 저런 수당을 전부 합해 월평균 1백1만3천원을 받는다.

초임사무관에 관한한 분명 대기업보다도 봉급을 많이 받는다. 물론 5년차가
되면 경제관료쪽이 월평균 1백39만5천여원, L그룹이 1백53만6천원으로
역전돼 있지만.

그러나 분명 "시작"과 "끝"은 관료쪽이 좋다. 평생을 "진짜 박봉"에
시달려야 하는 7급이하 하위직 공무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고시출신 엘리트
경제관료들에 관한한 적어도 그렇다.

한 15여년만 "눈딱감고" 중도의 박봉존을 헤쳐 나가면 된다는 얘기다.
근속 20년만 넘으면 대망의 연금수혜대상자가 된다. 공무원 연금법에 따라
20년 근속하고 옷을 벗으면 퇴직당시 봉급의 50%에 해당하는 돈이 평생
나온다.

여기에 근속기간 20년을 넘으면 퇴직당시 연봉에 초과연수를 곱한 금액의
2%에 해당하는 돈이 추가된다.

근속 20년만 넘으면 언제든 관료생활을 "때려치워도" 다달이 최소한
1백만원 이상(사무관임관 20년차 공무원 월평균급여 2백50만원기준)은
받게 된다.

그냥 연금만 받는 것도 아니다. "낙하산"이 힘들어졌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연공을 쌓고 퇴직하면 웬만한 "자리"는 마련된다. 관료퇴직이후 보장되는
"낙하산 보직"까지를 감안한 "생애임금"은 관료쪽이 민간기업에서 뼈를 묻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박봉존에서 헤매는 시절이 고달프다고 치자. 그러나 이를 보상해 주는
메리트도 많다. 무엇보다도 그들 말마따나 "뱃속"이 편하다. 민간기업처럼
"눈치밥"을 먹을 일이 없다.

큰 부정이라도 저지르지 않는한 쫓겨날 위험도 없다. "찍혀봐야" 한직으로
밀려나는게 고작이다. "명예욕"만 버리면 한직을 전전하는게 나쁠 것도
없다.

어느 자리에 있건 봉급은 똑같고 일은 편하기 때문. 어느 경제부처의
C국장은 이런 상황을 가장 "엔조이"하는 경우로 "과천"내에서 회자되고
있다.

과장시절 그는 장관에게 "국장만 시켜주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웬걸.
막상 국장으로 승진되자 "언제 나가겠다고 했냐"는 식으로 버텼다.

장관은 "아프리카의 오지로 내보내면 제풀에 그만두겠지"하는 생각으로 그
곳으로 발령을 냈지만 "천만의 말씀". 2년을 "즐겁게" 지냈다.

그 사이에 장관이 먼저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장관이 이번엔 오지근무를
마치고 온 그를 "한직"으로 통하는 산하기구로 보냈지만 아직도 그는
안분자족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성급하게" 관료생활을 중도에 그만둔 사람은 "결단"이 "후회
막급"으로 변하기도 한다. "공무원이 옷 벗을 때의 심정이요? 군복을 벗고
전역한 군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들이 느끼는 거나 우리네 심정이나
똑같을 테니까요"

사무관시절 일찌감치 경제관료생활을 정리한 럭키금성그룹 P이사는 "이곳
으로 일터를 옮겨 ''별''을 달기까지 해온 노력의 절반만 공무원시절에
기울였어도..."라는 말도 덧붙인다.

물론 경제관료들 모두가 "배짱좋은" 세월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P이사의 말을 유추해석하지 않더라도 그들만큼 편한 생활하는 직군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히 퇴출이 안되고 진입도 어렵다. "경제관료 두들겨패기"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입장벽이란 울타리를 허물고 퇴출을 활성화
시키는 것만이 관료집단의 혈행을 바로잡고 활력을 불어넣는 길이 될게다.

"쌀시장도 빗장을 열었는데 관료도 경쟁력있는 외국산을 수입하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역설적으로 국민이 경제관료들에게 거는 기대와 관심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채찍"을 "당근"으로 새겨 소화할 줄아는 성숙한 경제관료상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