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라는 말에 사이고는 가뜩이나 큰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사를 하다니?"

"레이의 거사를 하는 겁니다. 폐번치현은 봉건제도를 뿌리뽑는 일이니까,
왕정복고에 버금가는 큰 과제지요. 번주들을 설득해서 실행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판적봉환과는 또 다르니까요. 그러니까 거사를 하듯 전격적
으로 단행하는 겁니다"

"흠-"

사이고는 매우 흥미가 있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술기운에 힘입어 오쿠보가 얼굴을 싹 바꾸듯 옛 가고시마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형님이라고 깎듯이 부르며 정겹게 나오자, 그릇이 크고 정이 많은
사이고는 결코 싫지가 않아 반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생각이 물렁물렁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거사라는 말이 묘하게 가슴에 다가와 술기운과 함께 온몸을
화끈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또 한번 거사를 한다. 그거 재미있는 일인데..."

사이고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오쿠보가 권한 술잔을 기울였다.

그날밤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동의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뒤 결국 사이고는
폐번치현의 즉시 단행쪽으로 흔쾌히 생각을 돌렸다.

오쿠보가 거사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몇해 전 왕정복고를 위한 새벽의
거사처럼 무력을 동원해서 조정을 점거하는 식의 그런 어마어마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칼자루를 자기네가 쥐고 있는 터이니,
메이지천황의 이름으로 칙서를 발표하여 강제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었다.
번주들의 허를 찌르듯 전격적으로 강행하는 것을 두고 거사에 비유했던
것이다. 그래야 사이고의 생각을 돌릴 수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 최고수뇌부는 극비리에 일을 추진하여 7월14일
마침내 폐번치현의 칙서가 공포되었다. 천황의 거소인 옛 에도성의
대회의실에서 메이지천황이 정부의 고관들과 도쿄에 와있는 번의 지사들, 즉
이름은 지사로 바뀌었으나 옛 그대로 여전히 번주 노릇을 하고 있는
다이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칙서를 낭독했다.

이제 스무살이 된 메이지천황이 칙서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장내는 두갈래의
상반되는 긴장이 교차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정부의 고관들은
드디어 번의 뿌리를 뽑아 명실공히 막번체제를 청산해서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게 되었다는 후련함에 밝은 표정의 긴장감에 휩싸였고, 지사인
다이묘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절망감에 암담한 긴장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