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대출권한을 거머쥐고 힘께나 쓰는 사람이 은행의 전부는 아니다.

바닥을 맨발로 뛰는 은행원도 있다. 동전교환원들이 그들이다. 동전교환기
(카트기)를 밀고서 상인들을 찾는게 이들의 주 임무.

대리가 거액을 횡령하더라도, 전산조작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더라도 시장
바닥을 훑는 이들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이들이야말로 은행의 기본인
신용을 현장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련다 떠나련다 우는 아들 손을 잡고...".

서울중구중림동에 있는 중림시장. 매일 오전7시면 이런 뽕짝 노랫소리가
어김없이 울려 퍼진다. 노랫소리와함께 이곳 상인들은 귀한 "손님"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오전7시면 새벽3시에 시작한 새벽시장이 한참 무르익어 파장을 앞두고
있을 때. 상인들이 노랫소리를 듣고 기다리는 사람은 조흥은행 봉래지점
행원 김중하씨다.

김씨가 원님행차처럼 노랫소리를 앞세우고 시장에 입장하는 것이나 상인
들이 김씨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장사에 필요한
동전을 바꾸고 그날 수금한 돈을 예금하기 위해서다.

"동전교환원". 김씨의 비공식 직함이다.

김씨가 서울월계동에 있는 집을 나오는 시간은 오전6시. 은행에 도착
하자마자 1백원짜리 동전 2자루와 5백원짜리 동전 반자루, 1천원짜리
지폐등 2백20여만원을 동전교환기에 싣고 시장으로 향한다.

이 때가 오전7시.

이 때부터 오전9시30분 시장이 파장할때까지 김씨는 새벽시장의 손님도
되고 주인도 된다. 생선노점상에서부터 라면집아줌마까지 아는 체를
하지않고 지나치는 사람은 없다. 빵도 얻어 먹고 음류수도 함께 마시다
보면 거르고 나온 아침식사도 해결된다.

그러다보니 인도에 빼곡히 들어찬 3백여명의 노점상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가 됐다.

김씨의 주된 업무는 동전교환.

하루평균 1백30여명에게 1만원짜리를 동전으로 바꿔주기도하고 동전을
지폐로 교환해주기도 한다. "일수찍기"도 빼놓을수 없는 일과이다.

이곳 상인들은 새벽에 후다닥 일을 헤치운다. 은행에 갈 짬을 거의 내지
못하는건 당연하다. 대부분 주머니돈이다보니 그날그날 예금해야 안심이
된다.

그래서 아예 김씨에게 통장을 맡겨놓고 매일 돈을 예금하는 사람이
1백여명정도나 된다. 이들이 바로 일수를 찍는 사람들이다.

김씨가 일수로 거둬들이는 돈은 하루평균 수백만원에 달한다. 지난달엔
2억원(계약액기준)의 적금을 신규 유치하기도 했다.

이외에 각종 공과금과 세금을 대신 납부해주거나 예금상담을 하는 것도
김씨의 주된 일이다. 이제 김씨는 상인들에게도 그렇고 은행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고 한다.

중소기업은행제기동출장소의 송기옥대리.

그는 하루종일 경동시장에서 지내다시피 한다. 경동시장은 1천여 한약상
들이 모여 있는 곳. 송대리가 동전교환기를 끌고 시장에 나타나는 시간은
오전 9시15분께다.

이때부터 약3시간동안 경동시장 구석구석을 누빈다. 동전도 바꿔주고
역시 일수를 찍기도 하고. 점심식사를 마친 다음에도 송대리는 경동시장에
있다.

오후2시부터 4시30분까지 동전교환기를 갖고 지낸다. 반평짜리 좌판의
권리금이 5천만원에 달할 정도로 경동시장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다.

바닥이 이렇다보니 여러 금융기관들이 탐을 내는건 당연하다.

기업은행외에 신한 국민은행과 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까지 동전교환기를
운영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만큼 얼마나 부지런하느냐가 고객유치의
관건이다.

송대리는 그래서 기본적인 업무외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예 시장
에서 하루종일 사는 "시장사람"이 되기로 했다.

동전교환기의 원조는 신한은행.

골프장에서 운영되는 카트기를 보고 특수제작한 일종의 "특허품"이다.
처음엔 신한은행만 잔돈이 필요한 시장상인들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서비스를 실시했다.

동전교환이 의외로 호평을 받자 다른 은행들도 너도나도 동전교환기운영
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대형은행의 경우 평균 60-70개의 동전교환기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일반화됐다.

동전교환기를 운영하는 지역은 주로 시장등 상가지역. 서울 방산시장이나
남대문시장등 대형시장에는 10여개 은행에서 동전교환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동전교환에만 그치는건 아니다. 매일 예금을 받아다 입금
시켜주기도 한다. 이른바 "파출수납"이 이것이다. 파출수납때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비, 반드시 책임자가 동행 한다.

동전교환원.

이들의 역할은 은행 전체적으론 아무런 빛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항상 현장에 있다.

돈이 오고가는 현장에서 각종 사고로 금이가고 있는 은행신용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