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템스강가의 명물 빅 벤이 오후2시30분에 차임 벨을 울리면 하원의
의사일정은 시작된다. 가발에 긴 검정색 가운을 입은 의장이 선도자를
앞세우고 본회의장에 입장하면 여야의원들은 모두 기립하여 경의를 표한다.
이윽고 의장이 자리에 앉으면 의원들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영국 국회의 의장은 이처럼 권위가 있다.

물론 영국 국회라고 여야격돌이나 소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내
가 소란스러워지면 의장이 "오더 오더"(질서 질서)라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발언자를 포함하여 모든 의원들이 입을 다물고 제자리에 앉아
조용해 진다. 우리나라 국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다.

영국의장의 이같은 권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의장은 항상 초당적
입장에 서면 추호도 의혹을 살만한 일은 하지않기 때문이다. 의장은 특정한
의원과 특별한 친교를 갖지 않으며 원내식당이나 휴게실에는 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고독하지만 그 희생위에서 권위가 생겨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국회의장은 초당적인 입장에 서기위하여 당적을 이탈한다. 그래서
집권을 하려는 야심에찬 정치인은 국회의장 물망에 오르는것을 기피한다.
그런 만큼 공정성도 있게되고 권위도 서게 된다.

우리나라 역대 국회의장은 몇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만신창
이라 할수 있고 따라서 의장의 권위란 찾아볼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권력
구조가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대통령중심제이기때문에 개인적인 자질의
문제도 있지만 제도적으로 국회의장의 권위를 지키기가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여당의 총재가 대통령이므로 국회의장은 건국초기를 제외하고는 대개
대통령이 후보를 지명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다시말하면 행정부의 수반이
입법부의 수장을 지명한 셈이된다. 그 결과로 일부 여당의원의 반발을
샀었던 일도 있었지만 국회의장은 행정부의 계획에 따라 의사를 강행할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된다. 역대국회에서 빚어졌었던 난장판이나 파행은
이같은 권력구조상의 모순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았었고 따라서 국회의장의
권위가 설여지가 없었다.

국회제도개선위(위원장 박권상)가 국회개혁에 관한 건의서에서 국회의장의
당적이탈과 임기를 4년으로 연장하는 다수의견을 국회운영위에 넘겼다
한다. 현행제도 보다는 진일보한 개혁안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으로 국회가 국회의 자율권을 어떻게 지켜나갈수 있느냐는 것이 아직도
문제로 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