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의 성공을 지탱해온 국제환경이 90년대후반이후 큰 변화를 보일
조짐이다.

경제면에서는 이제까지 개방적 국제경제체제의 수호자였던 미국의 변화
이다. 미국은 국내의 고용창출을 무엇보다 앞세우는 클린턴대통령의 출현
으로 미국제품과 서비스의 수출을 늘리기위해 양국간 일방적이며 기한없는
교섭을 강요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의 교섭결과, 95년 설립되는 세계무역기구(WTO)하에서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던 세계무역의 확대는 미국의 강압적인 자세로 벌써
부터 커다란 곤란에 직면하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직접투자의 급증과 중국의 대두에 의해 대규모적인
산업재배치가 진행중이다. 아시아지역이 앞으로도 세계에서 가장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것은 거의 확실하다. 개혁과 개방에 성공한 중국이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일본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모든나라가
무역과 투자활동의 중점을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안보면에서는 유럽의 냉전이 끝났다고 하나 중국의 군비확장이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크게 변화시키고 북한이 핵개발을 진행시키고 있어 정세는
오히려 불안정해졌다.

이로 인해 아시아에서 미군의 전방전개를 앞으로도 유지하면서 아시아 각
국이 다자간협력에 의해 자신들의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해 일본은 냉전시대보다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책임을 지게됐다.

일본기업은 새로운 환경아래서 국내 하이테크분야의 기술개발을 강화하고
아시아각국으로부터의 제품수입에 의한 코스트삭감,나아가 경쟁력을 잃은
산업에서는 고용조정을 진행시켜야 한다.

아시아각국은 대일수출을 늘리기 쉬운 환경을 맞이했다. 아시아 각국이
마찰이나 대립을 현명하게 처리하고 아시아내에서의 역내 분업을 심화
시키며 대외적으로 지역의 개방성을 유지할수 있다면 아시아는 한층 높은
발전과 번영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국제경제환경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변화는 94년안에 중국이 관세무역일반
협정(GATT)에 가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95년초까지 WTO가 발족되기로
예정돼 있다는 점이다. WTO는 두나라간에 분쟁이 생겨도 당사국끼리의
교섭이 아니라 다자간 룰에 기초,내부 분쟁처리위원회를 통해 분쟁을 해결
할수 있는 힘을 갖게 돼 종래의 GATT보다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후 세계경제의 발전을 지탱해온 자유.무차별.다자간이라고 하는 세계
무역원칙은 앞으로도 유지되고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려되는 점은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이 자국의 제품과 서비스수출을
늘리기 위해 다자간 룰을 무시하고 강제로 양국간 교섭을 시작하는 일이다.
일본과의 양국간교섭(일명 미일포괄경제협상)이 미국의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자 미국정부는 94년3월부터 2년간의 시한입법으로 통상법301조를 부활
시켰다.

보복위협을 하면서 기한을 붙여 교섭하는것은 명백히 GATT의 룰에 위배
되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일방적인 방식을 택한다면 WTO체제아래에서
기대되는 세계무역의 확대나 새로운 자유화의 추진이 설자리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본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의 위험스런 징후이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수치목표"설정을 거부하고 있으며 미국은
수치목표가 어렵다면 "객관적지표"라도 설정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이
모두 타협에 의한 해결을 지향하고 있어 결국 쌍방이 일단 수용할수 있는
형태로 타결될 전망이다. 그러나 포괄경제협상으로 불리는 이 교섭이
끝난후에도 양국간 경제마찰은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대통령이 미국경제의 재건과 수출의 확대를 최우선목표로 내걸고
국제적 룰이나 상대국의 상황을 무시하고라도 미국에 유리한 형태로
외국시장개방을 강행하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가 충분치않아 정확한 수치는 잡히지 않지만 미국의 대외순채무는
현재 수천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94년초에도 여전히 월70억~80억달러의
경상수지적자를 내 대외순채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미국이라고
하나 언제까지나 외국에 빚을 지고 있을수는 없다. 경상수지를 적자에서
제로로 하고 다음에는 흑자로 돌려 대외채무를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갖는 총체적 힘을 발휘,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수출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시애틀에서 아태경제협력회의(APEC)가 열렸을때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소집,역내에서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시작하자고 강력한
설득공작을 펼친것도 미국의 수출증대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APEC가맹국들의 소득수준이나 공업력은 천차만별이어서 아무래도 미국이
원하듯 자유화를 성급히 실현시킬수 없는 상황이나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높은 성장력에 주목하고 있는 미국은 이지역에서 미국에 유리한 형태의
시장개방을 실현하겠다는 희망을 불태우고 있다.

지역적인 경제협력기구로서 APEC을 발전시키면서 미국의 자유화요청에도
대응해나가는 것이 일본의 대아시아경제정책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아시아지역의 경제발전은 종래 대미수출에 의존한 성장에서 역내무역
확대에 의한 자주적인 성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시아지역(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9개국을 지칭)
수출총액중 역내국가간에 이뤄진것은 86년의 31%에서 92년에는 43%로
늘어났다. 이에비해 같은기간 대미수출비율은 34%에서 24%로 낮아졌다.

나아가 개혁 개방정책의 성공으로 무역.투자활동을 활발히 하고있는
중국이 있다. 93년4월부터 9월까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직접투자는
전년동기대비 57%나 늘어났다. 중국이 갖고 있는 질높은 인적자원과
공업력 거대한 국내시장을 생각한다면 중국은 아시아경제의 성장을
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분을 더하면 아시아의
역내무역비율은 한층 더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아시아가 자립적인 성장력을 갖는데 따라 미국시장진출권을 교섭재료로
삼아온 미국의 아시아각국에 대한 교섭력은 약해질수밖에 없다. 이사실을
잘 알고있는 미국은 미국제품과 서비스의 대아시아시장 진출을 더욱더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아시아각국의 경제발전에 협조하면서 아시아지역에 일본
이외의 선진공업국을 키워나가는 것이 올바른 대응이다. 세계경제안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높아지는것은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도 아시아국가들과
깊은 분업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일본의 국제경제활동의 기초가 한층 강화
됨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선진7개국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아시아국가는 일본뿐이다.

비서구의 전통문명을 지키면서 고도의 공업력과 안정된 민주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가 일본뿐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본은"이질적인
나라"로 취급받고 일본내 기업간의 장기적거래 자본시장의 모습 관.민
협동의 전통이 구미제국과의 교섭에서 "폐쇄성"으로 취급받아 개혁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본래 자본주의 문명은 다양한 것이다. 아시아나라들중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들어가는 나라가 늘어나면 각국 시장의
형태가 다양해짐으로써 시장제도의 성급한 변화를 요구하는 구미제국의
압력은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힘의 증대와 다양한
자본주의 문명이 개화될 전망이 나오는것은 일본에 있어 국제환경의 큰
변화이다.

그러나 경제를 떼놓고 본 안전보장분야에서는 일본및 아시아각국이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에 더욱 크게 의존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국내의 경제혼란
으로 인해 직접적인 군사적위협이 줄었다고하나 러시아는 여전히 큰 군사력
을 가지고 있어 잠재적인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불안정요인이다.

이보다도 문제가 되는것은 중국의 군비확장이다. 89년이후 매년 15%이상
국방예산을 늘려온 중국은 94년에는 군사력을 22%나 증강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군축이 진행되는 가운데 시대를 역행하는
움직임이다. 북한도 핵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움직임에 대항할수 있는것은 미국의
군사력뿐이다. 미국의 강점은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미국은 아시아각지에 군사력을 전개하고 있으면서도 영토적야심을
갖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경계의 시각을 낳지는 않고 있다. 미국은
신용받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그 존재가 안정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환영받고
있는 유일한 군사대국이다.

복잡하고 불안정해진 냉전후 아시아의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를 확보해가기
위해 앞으로도 각국은 미국과의 안전보장상의 협력관계를 심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다만 그협력관계는 과거와 같이 한미 한일과 같은 양국간 안전보장체제
만이 아니라 아시아지역전체의 다자간협력과 대화에 의해 신뢰관계를 조성,
군사적 긴장을 약화시키고 지역전체의 군사력 수준을 낮춰나가는 다자간
안전보장을 추구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자간
협력적 안전보장을 아시아가 배우자는 교훈이며 일본의 안전보장에 있어
중요한 환경변화이다.

일본은 정치면에서 아시아국가들과 다자간대화로 평화를 확립시키고자
노력하고 경제면에서는 역내 각국과의 분업을 심화시켜 나가려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각국에게 대일수출을 늘리고 일본시장참여를 확대하는 호기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이다. 일본과 아시아국가들간의 관계는 아시아에서
원재료와 중간제품을 만들고 일본에서 최종가공제품을 만드는 수직분업에서
아시아 각국이 최종제품분야를 나눠서 생산하는 수평분업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에서 만드는것은 매우 기술집약도가 높은 최종제품만으로 한정시켜야
한다.

바람직한 분업관계를 진행시키기 위해 일본은 앞장서서 시장을 개방하고
어려운 산업조정을 강행해야 한다. 첨단분야에서의 기술개발을 강력히

(한국경제신문 1994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