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젊은 날의 꿈과 야심만만한 20대에 우리는 "죽을때까지 이
걸음으로"의 자세로 희생과 봉사와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며
선맥(조선의 줄기찬 맥을 이어간다의 뜻)을 조직하여 15년동안 5백32명의
회우들이 호흡을 같이하여 왔다.

선맥은 그 이름에서도 시사하듯이 우리의 조국강산 어디에나 발길닿는
곳이면 어루만지고 사랑하고 싶다는 열정이 만들어 낸 모임이다. 우리
사회전반을 민주화시키는데 앞장설 동량들을 일찌감치 육성하자는 취지
에서 해마다 패기에 찬 고등학교 3학년생을 신입회원으로 받아들인것이
이 모임의 가장 큰 특색이다.

매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생활의 터전인 변산반도의 산과 바다를 찾아
대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취해도 보고 내일에의 벅찬 희망과 포부를
노래하기도 했다.

또한 서슬퍼런 긴급조치 시절에 함석헌 장준하선생을 모시고 이민족이
나아가야 할 참된 길을 묻기도 했다.

어느날 문득 지천명의 줄에 셔있는 내 모습을 보고 너무도 오래 떨어져
있는 우리 회우들을 생각하며 하루속히 그날 그 꾸밈없고 맑은 마음,
짙푸르고 싱그러운 웃음들을 되찾아 한자리에 다시 모아야겠다는 바램으로
창립기의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지금도 격월로 산하를 찾는 농목회를 발판
삼아 부활 창립총회를 열어야 겠다는 생각에 가슴설레인다. 5백32인. 그
빛나던 눈망울, 쌍선봉에 올라 낙조대의 일몰에 취하던 그 얼굴들이 선연
하게 떠오르고 가람골 채석강의 넘실대는 푸른물결,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장부의 기상을 떨쳐보겠다던 그 면면들이 이제 불혹으로,지명으로
원숙하게 변모했으리라.

다시 모아야 겠다.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

배우지 않은 미적분을 척척 풀어 수학선생님을 항상 곤혹스럽게 했던
나상윤형은 지금 국세청에서 촉망받는 일꾼이 되어있고 육군중령으로
에편후 (주)부림건설에 총무이사로 맡고있는 사람좋고 민첩한 김철종,
언제나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듯 심각했던 배호순은 교육학박사로 대학
강단에 서있다. 치밀하고 추진력있던 김용록은 율사로,호탕한 웃음과
걸걸한 목소리로 좌중을 즐겁게 하던 김길택은 건설회사사장으로,북구
문학에 심취하던 독서광 최귀열은 훌륭한 고등학교 선생님으로,선배
이면서 우리와 동참하여 훗날을 기약하던 김홍렬형은 고향마을의 이름을
따 "예동"의원을 열어 소망대로 인술의 도를 펼치는 한편 문단에 데뷔,
주목받는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타줄을 튕기며 노래 잘부르고 춤
잘추던 호남아 허주백은 동심세계의 순정함에 푹 빠져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어있다. 후배들 또한 각계에서 착실히 활동. 당대의 재사로 풍발하는
담론을 펴 쥐위를 사로잡던 신이영군을 생명보험업계 이론가로,진솔하고
명경지수처럼 조용한 천재형 서양래군은 감사원의 굽힘없는 사정관으로,
그외에 일일이 열거할수 없는 회원들이 사회 각분야에서 충실한 활동을
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