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 스리 에릭 치아사장(61)의 경영철학에는 인간미가 배어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한다는 생각에 앞서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조직인
개개인의 힘을 결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이다.
회생불능판정을 받은 적자투성이 국영기업인 페르와자를 기사회생시켜
말레이시아정부의 국영기업 민영화대상에 올려놓은 것은 치아사장의
이같은 경영철학이 밑바탕이 됐다.
치아사장의 경영철학은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형성됐다.
싱가포르태생 화교인 그는 20세때 콴탄항에서 트럭운전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3명의 어머니와 18명이나 되는 형제들의 생활을
도와야하는 그의 호주머니는 항상 비어있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국수집을 들러도 언제나 빵 몇조각에 만족해야했다.
"어느날 국수를 먹지 않는 이유를 묻는 아주머니에게 텅빈 지갑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해야했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러나 그날부터 국수집 아주머니는 가난한 청년 치아에게 돈을 받지
않고 먹고싶어하던 국수를 말아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청년 치아가
삶과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을 뒤바꾸게하는 요인이 됐다.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인간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이나 돈이 아니라 인간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목마른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것은 물이지 결코 값비싼 브랜디가
아니다"
사람이나 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그에따른
정확한 처방으로 그것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치아가 마하티르 모하메드총리의 부탁으로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88년
당시의 페르와자는 7억2천5백만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때였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말레이시아 현지조립공장의 우두머리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그가 바라본 페르와자는 거의 빈사상태였다. 어떤이들은 페르
와자가 위치한 동부연안 테렝가누주 케마만시 부근의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말레이시아인이 중공업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며 말레이농부와 어부들을 마구잡이로 채용했기 때문
이라고도 분석했다.
그러나 치아사장은 아무리 여건이 열악하더라도 노사가 힘을 합하면
안되는일이 없다는 신념으로 아픈곳을 하나씩 치유해 나갔다.
우선 근로자 개개인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주입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경영자와 근로자가 별개의 존재들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했다.
"인간적인 면에 성심성의껏 호소하면 근로자들은 천배만배 되갚는다"는
점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말레이시아경제권을 휘어잡고 있는 화교
라는 인식을 떨쳐버리게하기 위해 말레이노동자들에게는 말레이어로만
말했다. 일과시간 이후에는 공장 바깥에서 근로자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가정을 방문해 식사도 함께했다. 사장실문은 항상 열어뒀다.
"회사중역실의 카펫은 모두 검은색이다. 공장근로자들이 카펫이
더러워질까 염려돼 중역실을 찾지 않는 경우를 없애기 위해서다"라고
완 모하마드 자인 공장장은 치아사장의 "Open Door"정책을 설명한다.
여러계층의 근로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데 지옥훈련이 한몫했다.
1천2백여명의 근로자를 직위는 물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를 편성해
정글로 내몰았다. 그들에게는 일정량의 식량과 배낭 그리고 컴퍼스만이
주어졌다. 리더십을 계발하고 서로가 함께 일해야하는 동료란 인식을
갖도록 하는게 목적이었다.
"지옥훈련이후 여성근로자들도 특공대원처럼 강인해졌다. 관리자들도
공장내 부하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모두들 자신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자세가 역력하다. 한사람의 실수는 곧 전체
동료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지옥훈련을 통한 경험으로 습득했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의 마음가짐은 페르와자의 만성적인 허약체질을
크게 개선시켰다. 일을 하자는 분위기가 1천2백여 조직원들 사이에 확산
됐다. 관리자들의 자세도 몰라보리만치 달라졌다. 철강제품생산의 기초
원료인 압연강판을 연간 1백만t 생산, 아시아의 페르와자임을 자랑하게
됐다. 지난 92회계연도의 세전수익이 3천만~4천만달러로 집계, 이제는
남는 장사를 하게됐다는 신념으로 사기가 충천했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병사들의 전투능력이 뒤지기 때문이 아니다.
장교의 지휘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적절히 활용, 분산된 힘을
한데 모으는 것이 고지탈환의 관건"이라고 치아사장은 강조한다.
<김재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