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 이원만 회장님

인간이 어찌 하늘을 뜻을 거역할수 있겠습니까마는 막상 저희 곁을 떠나
홀연히 영안하시니 인생무상과 함께 회장님을 잃은 슬픔을 달랠길이
없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황무지나 다름 없었던
이 땅에 회장님께서는 기업보국의 기치아래 우리 앞에 거목처럼 나타
나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코오롱을 창업하신후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다는
나일론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시면서부터 우리나라는 공업입국의 위대한 첫
발을 내딛게 됐으며, 당시 헐벗고 굶주린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5.16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의 회장님 일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뜻을 자신있게 밝히지 못하고 있을때 회장님은
소신껏 농공병진의 정책을 제안하셨고, 이러한 회장님의 추진력은 국가정책
으로 즉시 반영되어 서울 구로동에 한국 수출 산업공단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곳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써 회장님께서 늘 주장
하셨던 수출 한국의 첨병이 되고있어 회장님의 남다른 탁견에 삼가 머리가
숙여질 뿐입니다.

오운 이원만 회장님

회장님께서는 살아 생전, 신출귀몰한 아이디어와 추진력으로 주위사람들
을 자주 놀라게 하셨습니다.

한번 옳다고 생각된 일에 대해선 어느 누구하고도 담판을 내고야 마셨던
회장님의 배짱, 그러면서도 회장님께서는 남을 끌어들일수 있는 강한
흡인력이 있으셨기에 회장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6,7대 국회의원 시절 어민들의 생활 보호를 위해 양식 어업을 제참하셨고,
철도 침목과 전봇대를 시멘트로 바꾸면서 산림 자원 보호에 앞장서셨는가
하면, 프로판가스를 생활 연료로 도입케 하는등 회장님께서 남기신 채취는
아직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항상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시어 우리도 보란듯이 잘살아 보자고 앞장서
실천하셨던 회장님의 높은 뜻은 오늘날 이 땅의 기업인들에게 나라를 위한
일이 진정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며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오운 이원만 회장님

회장님은 이땅에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정치, 경제계의 거목이셨습니다.

기업인이면서도 정치에 몸담고 계셨을 당시, 흔히 호사가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정경유착을 회장님께서는 스스로 거부하시고 선양으로 오직 국가
와 민족의 장래만을 걱정하시던 회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특히 그 특유한 경상도 사투리 - 회장님께서는 스스로 통일신라시대
표준어라고 강조하셨던 - 로 저희들의 잘못된 점을 꾸짖어 주시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볼수 없어 아타까운 마음을 금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장님의 숭고한 뜻은 국가를 생각하는 정치인, 민족을 생각하는
기업인의 상집이 되어 자손만대 영원히 전해질 것입니다.

회장님께서 닦아놓으신 토양위에 저희는 새로운 의욕을 갖고, 회장님의
높은 뜻이 계속 좋은 열매를 맺을수 있기를 다짐합니다.

삼가 영전에 머리숙여 명복을 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