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장개입은 비효율적이다''(63%) ''정부규제는 심한 편이다''
(69.2%)

최근 한 민간연구소가 정부규제와 관련해 조사한 설문조사결과의 한
부분이다. 얼핏 보기엔 민간기업인들이 털어놓은 ''불만섞인 응답''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놀랍게도'' 이 응답결과는 바로 규제의 장본인들인
공무원들로부터 나왔다.

규제의 칼날을 직접 휘두르고 있는 공무원들 스스로도 ''비효율적''이고
''심한 편''이라고 느낄 정도로 정부의 시장개입과 행정규제는 극을 치달아
왔다. "기업이 좋은 조건으로 외국바이어와 상담을 해 수출대금을 미리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잘하는 일입니까. 국내하청제조업체에 자금지원을
여유있게 해줄수도 있고 은행돈도 형편이 더 어려운 다른 기업들에 돌려
쓰게 할수도 있지요. 그런데 우리정부는 이 수출선수금을 한도를 정해
규제하고 있어요. 지구상에 이런 정부는 우리나라에 밖에 없습니다"
(S종합상사 K이사)

수출용원자재외상(연지급) 수입기간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기업들
이 수출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자재를 당장의 자금부담없이 외상으로
들여올수있는 연지급수입도 철저한 규제대상이다. 일본같은 선진국은
무한정 허용하고 있고 대만도 7년까지 인정하고 있는 이 외상수입기간이
우리나라에선 어떤 경우에도 1백20일(약4개월)을 넘어서는 안되게 돼있다.
이유는 통화관리에 따르는 부담 때문이다.

''아무리 기업들에 좋고 나아가서 국가경제에 좋은 일이라도 통화관리를
골치아프게 만드는 일은 절대불가''라는게 대충 우리관료들의 ''목민원칙''
처럼 돼있다. 수출선수금 한도를 정해두고 이를 규제하고 있는 것 역시
''기업들 맘대로 외국돈을 들여오면 통화관리가 복잡해지니까 사절''이라는
식이다.

이쯤이고 보면 정재석 신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이 취임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규제완화문제에 언급, ''나는 사업가나 국민과 싸운게
아니라 내 부하와 보좌관들과 싸웠다''는 에르하르트 전서독총리의 말을
인용하면서까지 "건수위주의 규제완화가 아니라 ''탈규제''를 해야한다"고
말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국가간 무역장벽제거와 정부의 자국업계 직접보조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이 오는 95년부터의 발효를 앞둠에 따라
이제 우리기업들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외국의 유수한 기업들과 경쟁
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정작 기업들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정부지원
감축에 있지만은 않다. 기업들이 버거워하는 각종 행정규제가 좀체 사라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영삼정부 출범
이래 갖가지 행정규제완화작업이 ''신경제''의 핵심과제로 추진되고 있다
지만 기업들은 별다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문제다.

전경련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의 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기업인들은 정부규제완화시책과 관련, ''민간등의 의견수렴이 부족하다''
(31.6%) ''건수위주의 형식적 완화에 지나지 않는다''(25.4%) ''부처간
이기주의로 규제완화의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16.8%)는 등 한결같이
부정일변도의 인식을 나타냈다.

세계통상질서의 전면적인 개편을 강요하는 UR시대에서는 기업은 물론
정부의 국제화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조차 힘들게된게 사실
(박운서 상공자원부제1차관보)이다. 그 국제화의 제1요건은 말할 것도
없이 기업들이 자본 토지 노동력등 생산의 기본요소들을 비교우위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데 있다. 정부가 각종 인허가권을
움켜쥐고 생색내듯 찔끔찔끔 ''규제''를 ''완화''해 나가는 식으로는 기업이
무너지고 따라서 우리경제가 무너질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스위스의 국제경영연구원(IMD)이 15개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합적인 국가경쟁력은
대만은 물론 말레이시아에도 못미치는 6위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스스로의 문제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부의 각종규제정책이 기업들의
발목을 붙들어 매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UR타결로 어수선하게 맞고있는 새해(1994)는 세계열강의 각축속에서
우리나라의 국제화와 개방화를 사상 처음 추구했던 갑오경장(1894)이
반포된지 꼭 1백년째를 맞게 된다.

당시 국제화 개방화를 겨냥했던 갑오경장은 정치 경제적 기득권고수
를 위해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했던 많은 양반관료조직의 저항에
의해 무너졌다. 그결과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이 일제에 의한 수탈로 이어
졌을 뿐이다. 1백년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2의 갑오경장
을 성공시켜 UR파고를 이겨내느냐의 기로에 우리는 서있다.

< 이학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