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를 지켜가려는 문단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영화감상문의
형식을 띤 중편소설이 발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중견작가 조성기씨(42)가 최근 계간 "세계의 문학"(겨울호)에 발표한 중편
"피아노,그 어둡고 투명한"은 영화 한편을 텍스트로 그스토리를 좇아가면서
감상자의 의식의 흐름을 그린 작품이다.
최근 우리 문단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영상매체와 활자매체간의 관계설정
에서 이 소설은 묘한 접점을 찾아내고 있다.
영상매체를 활자매체로 해석, 분석해 또 다른 문학작품으로 만들어냈다.
"피아노, 그 어둡고 투명한"은 작중화자가 "피아노"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금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제인 캠피온감독의 "피아노"는
뉴질랜드의 바다와 원시림을 배경으로 벙어리여인이 사랑을 통해
여인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벙어리여인 아다를 보고 고교시절 친구의 어머니였던 또 다른
벙어리여인을 떠올리고 피아노가 침묵의 바다 깊숙히 수장될 때는 땅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신경숙의 "풍금"과 캠피온의 "피아노"를
대비시켜보기도 한다.
다소 엉뚱한 양식이지만 감독의 연출의도를 머리에 그리며 그것과 연관된
자신의 예술관을 교묘히 드러내고 있다.
구성자체가 영화에 이끌리는 듯, 즉 활자가 영상에 종속된 듯한 형식이지만
영화 속의 영상하나하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형식이다.
조씨는 이미 작품집 "통도사 가는 길"(민음사간)에 수록된 단편
"영화구경"을 통해 영화감상문형식을 통한 소설창작을 시도한 바 있다.
"독서하는 여인" "리큐" "어둠 속의 외침" "바베트의 향연"등 4편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쓴 이 소설에서 조씨는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내는 리얼리티가
허구이지만 영화를 보는 행위와 영화가 유통되는 사실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리얼리티로 보고 있다.
최근 출간한 "욕망의 오감도"(전4권.세계사간)에서도 줄거리 중에 영화
"애정의 조건"을 보는 장면을 삽입, 줄거리의 하나로 이어가는 색다른
시도를 보이고 있다.
"영상매체는 활자매체인 소설 시나리오 등에서 영감을 얻지만 소설도
영상매체에서 영감을 받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활자매체를 위협하는 대중문화양식으로 경계하던 영상매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문학의 한 양식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것은 90년대 이후 구체화된
새로운 경향이다.
일부 신세대작가들은 영화적 기법을 과감히 수용하고 시인 유하씨의
경우처럼 직접 영화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젊은 소설가를 중심으로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하, 하재봉씨등 문인들은 최근 "시네마천국" "비디오천국"등 영화.
비디오평론집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