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별러왔으나 세상살이에 쫓겨 미루어오다 지난 추석두주전
주말에 벌초하러 고향길에 나섰다.

옛날에는 머슴이나 종답부치는 사람에게 시켰으나 이젠 머슴도 종답부칠
사람도 없으니 일가들이 함께 모여 벌초하기로 규약을 정한지 오래다.

외지에서 합류한 아저씨 형님 동생 조카들과 함께 동네 뒷골짜기
"자라등"에서 "갓등"으로하여 이곳에 처음 터잡으신 10대조 산소부터
아랫대로 벌초를 해갔다.

9대조의 비석에서 "가의대부동지중추부사"라는 글을 보고 선친께서
"갓등할아버지"에 대하여 무척 자랑스러워 하시며 임금님의 옥새가 찍힌
교지를 소중히 간직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6대조 산소부터는 아랫동네 뒷골짜기 산중턱이라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숲속에서 자생란을 발견하고 몇촉 캐어 손수건에 쌌다. 난초는 이렇게
인적없는 서남향 산기슭중턱 소나무숲에 자란다고 숙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벌초를 끝내고 골짜기를 내려오니 옛날동네는 허물어져가는 집한채만 남고
잡초만 무성한 폐허로 변해있었다. 감나무와 무너진 돌담이 그곳에 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릴때 같이 축구하던 동무네 집터에 자라고 있는 한길높이 쑥대와 버려진
샘터를 보며 나는 왈칵 눈물이 솟구침을 느꼈다.

부들과 물풀들이 무성하고 말밤풀이 가득 떠있는 늪을 지나며 어릴때
소먹이고 고기잡던 일들이 생각났다. 건너 신작로에 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를 보고 도시로 가고파 잠못이루던 사춘기시절이 어제같은데 벌써
40대후반이다.

우리가 도시를 만드느라 정신없던 사이에 농촌은 이렇게 폐허가 되고
말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본 잘 가꾸어진 농촌을 생각하며 경제성장이
무엇인지,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내년에도,또 내년에도 벌초하러 오리라 다짐하며 늪길을 지나
논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