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는 요즘 돈을 쓰겠다는 소기업이 줄을 잇고있다.
정부에서 실명제로 어려운 소기업을 적극 도와주라고 독려하고 있어 이들
은행들은 가능하면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으나 일선 창구에선 마찰이 계속되고있다.
정부발표와 달리 은행에서 제대로 돈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은행측은 적극 지원할 태세는 되어있지만 이미 부도 난 업체라든지
꼭 떼일 것만같은 업체까지도 너나 할것없이 손을 벌리고 있어 부분적으로
신중을 기하다보니 업체의 모든 요구를 들어 줄수 없어 생기는 불만이라고
밝히고 있다.
총통화 증가율이 20%를 넘어섰고 앞으로 계속 돈은 풀릴수 밖에 없는 상황
에서 앞날을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지원된 돈이 제대로 회수될 것인지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은행들 스스로도 소기업에 준 돈중 상당부분은 떼일
각오를 하고 있을 정도다.
돈이 금융기관의 문턱을 들락거리면서 물 흐르듯 돌지않아 절대량을 늘리
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통화당국은 지원된 돈을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를
놓고 또 한차례 시련을 겪을 전망이다.
현재 지원되는 자금은 6개월짜리다. 당초 3개월이었으나 당국에서 만기가
오면 한번 더 연장토록 해 6개월짜리가 됐다.
당국은 은행들로 하여금 그자금을 직접 거두어들이도록 하지 않더라도
시긴이 지나면 은행들을 상대로 돈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수도있다.
내년초쯤인 그때 나간 돈이 들어오지않을 경우 은행은 지준부족에 시달리고
다른 금융기관도 유동성핍박을 느끼된다.
자금시장은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연말까지 해야할 2단계금리자유화가 돈을 빨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점진적인 자금흡수가 진행될 경우 2단계금리자유화에
큰 부담이 될수 밖에없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현재 풀어내고 있는 돈을 조급하게 회수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상당기간 지속적으로 많은 돈을 풀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좌승희 연구위원은 "실명제로 인해 사채시장이
위축되거나 예금회전율이 떨어지는 현상은 쉽사리 정상화되기 어렵다"며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지속적으로 늘려야만 금융시장의 충격을 최소화
할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채자금의 규모나 움직이지 않는 돈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지만
통화증가율을 4~5% 높여 1년정도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재하 박사는 "현재의 통화정책의 기준인
통화량 관리가 지금 당장은 밀리고 있으나 어차피 관리를 해야할 것"이라며
"관리에 들어갈 경우 실물경제를 위축시킬수도 있고 이미 풀린 돈은 그때쯤
물가를 자극할수 있어 경기위축속에 인플레라는 좋지않은 현상이 생길수도
있다"고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한은은 앞으로도 계속 돈을 충분히 공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풀린돈의
회수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 다소 성급하게 비쳐질수있다. 그러나 풀리고
있는 돈의 일부는 실명제로 고통을 겪는 소기업에 직접 들어가지않고
괜찮은 기업의 가수요를 채워주는 자금으로 쓰이고 있다.
일부는 실물투기쪽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돈푸는 속도를 신중히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에서다. 일선 은행창구 모니터 결과 정말 어려운 기업에 조차 돈이
나가지 않아 그들이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 양호한 기업들
이 기회다 싶어 돈을 끌어쓰고 있으며 이를 엄격히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풀린돈을 회수하는 일이 부담스런 과제로 부각되고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은행권에만 떠넘긴 데서 비롯되고있다.
단자사나 신용금고등에 수신이 원활하게 이뤄지지않아 은행권에서 필요
자금을 모두 공급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신용금고의 어음할인금리를 자유화하고 융통어음할인업무도 취급할 수
있도록 했으나 제기능이 살아나지 않고있다. 한은관계자는 이에따라
2금융권이 자금중개기능을 충분히 할수있도록 보완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