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지로는 앞으로 십여일 뒤면 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나는 아직 돌도
안된 아기를 두고 또 임신이 되어있었다. 벌써 석달째였다.

그러니까 사이고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까지 해서 세 모자를 남겨두고
떠나가게 된 것이었다.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도리가
없었다.

사이고로서 할수 있는 일은 그들 세 모자가 살아갈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동안 저축한 것을 모조리 털어서 논
두마지기와 밭 두마지기를 구입했고 조그마한 집도 한채 마련했다. 지금
살고있는 집은 류사운이 애들을 가르치라고 내준 집이니 돌려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이고는 류사민에게 자기의 가족을 잘 좀 돌봐달라고 단단히
당부를 했다. 삼년 동안의 섬 생활에서 가장 접촉이 많았고 정도 든 그와
석별의 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사이고는 그말을 꺼냈다.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데 들어 주겠소?" "뭔데요?
말씀해 보세요" "내 가족을 잘 좀 돌봐달라는 거요. 지금 아이가나는
임신중이지 뭐요. 그런 아내를 두고 떠나려니 내 심정이 어떻겠소? 필경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장가를 안들겠다고 했었는데 류상이 기어이
밀어붙여서 성사를 시켰으니 책임을 져야 되지 않겠소? 허허허. "
사이고는 웃었지만 그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술기운에 류사민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그 역시 농담이 아닌 진정으로 대답했다.

"염려 마세요. 내가 돌봐드리고 말고요. 선생님께서 가족을 위해 논밭을
사고 집까지 마련하셨다니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야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이가나가 얼굴이 고우면서도 착실하고 부지런한 여자니까,두 아이를
키우면서 잘 살아갈 거예요" "음- "
사이고는 조금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역시 가슴이 아픈듯 잔을 들어
꿀꺽꿀꺽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도록 거세게 술을 들이켰다.

사이고가 떠나는 날,선착장은 마을사람들로 메워지다시피 했다.
사쓰마에서 온 사람이 떠나는데 그처럼 섬사람들이 섭섭해 한 것은 처음
일이었다. 찔끔찔끔 눈물을 짜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아이가나는 남편이 배에 오르자,기쿠지로를 업고 야산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그리고 남편을 실은 배가 망망한 바다를 미끄러져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눈물과 한숨으로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