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판결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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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본 예링(1818~1892년)은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정의의 여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를 저울질하는 저울을 쥐고있고 다른 한
손에는 권리를 실제로 주장하는 칼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예링이 정의의
여신을 이같이 묘사한 것은 아마 희랍신화에 나오는 "법과 사회 정의"의
여신 테미스에게서 발상을 얻었을지 모른다. 테미스여신은 오른 손에
저울(천칭)을 들고 있는것으로 전해져있기 때문이다.
예링은 정의의 여신을 설명하면서 저울을 못가진 칼은 단순한 물리적인
폭력에 불과하고 반대로 칼을 갖지 못하고 저울만 갖고 있으면 강제적인
힘이 없으므로 법을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저울과 칼이 함께 갖추어질때만 법이 지켜지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파스칼이 "정의없는 힘은 무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효"라고 말한것과 같은
맥락의 생각이라고 할수 있다.
민주정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의 소장판사 28명이 30일 "사법부개혁
의견서"를 발표하였다. 이들의 행동은 사법부의 자기반성의
표출이기도하며 합리적인 "제도적 개혁"움직임의 자극제라고 할수 있다.
사법부가 무엇을 반성해야 할것인가는 이들의 의견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즉 "국가의 정치권력이 법의 이름을 빌려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할 때 이의 수호를 1차적 임무로 하는 사법부는 마땅히
"그것은 법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
사법부는 그와 같은 선언을 침묵으로 대신하였고 "그것이 정의"임을 선언할
것을 강요하는 현실이 정치권력앞에 무력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고있는 내용은 대부분이 국민의 동감을 얻고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의 행동이 사법부 내부의 민주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보이거나 이른바 "정치판사"와 소신판사의 대립등으로 국민에게 비쳐질까
걱정이 된다.
그들은 또 "판사들은 판결로써 말해야 했을때 침묵하기도 하였고 판결로써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것은 그들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판사란 판결로써
말하는것이 원칙이라는 사실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정의의 여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권리를 저울질하는 저울을 쥐고있고 다른 한
손에는 권리를 실제로 주장하는 칼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예링이 정의의
여신을 이같이 묘사한 것은 아마 희랍신화에 나오는 "법과 사회 정의"의
여신 테미스에게서 발상을 얻었을지 모른다. 테미스여신은 오른 손에
저울(천칭)을 들고 있는것으로 전해져있기 때문이다.
예링은 정의의 여신을 설명하면서 저울을 못가진 칼은 단순한 물리적인
폭력에 불과하고 반대로 칼을 갖지 못하고 저울만 갖고 있으면 강제적인
힘이 없으므로 법을 무력한 것이 되고 만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저울과 칼이 함께 갖추어질때만 법이 지켜지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파스칼이 "정의없는 힘은 무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효"라고 말한것과 같은
맥락의 생각이라고 할수 있다.
민주정치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의 소장판사 28명이 30일 "사법부개혁
의견서"를 발표하였다. 이들의 행동은 사법부의 자기반성의
표출이기도하며 합리적인 "제도적 개혁"움직임의 자극제라고 할수 있다.
사법부가 무엇을 반성해야 할것인가는 이들의 의견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즉 "국가의 정치권력이 법의 이름을 빌려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할 때 이의 수호를 1차적 임무로 하는 사법부는 마땅히
"그것은 법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절 우리
사법부는 그와 같은 선언을 침묵으로 대신하였고 "그것이 정의"임을 선언할
것을 강요하는 현실이 정치권력앞에 무력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고있는 내용은 대부분이 국민의 동감을 얻고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들의 행동이 사법부 내부의 민주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보이거나 이른바 "정치판사"와 소신판사의 대립등으로 국민에게 비쳐질까
걱정이 된다.
그들은 또 "판사들은 판결로써 말해야 했을때 침묵하기도 하였고 판결로써
말해서는 안되는 것을 말하기도 하였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것은 그들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판사란 판결로써
말하는것이 원칙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