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는 이사람이 혹시 숨이 끊어진게 아닌가 싶었다.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이 들어, "여보,여보"
좀 큰소리로 불러 보았다.

그제야 남정네의 고개가 조금 움직였다. 잠이 들어있었던 모양으로,
"으으응-" 하면서 무겁게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퀭한 두 눈으로
사이고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희멀건 것이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여보,어떻게 된 일이오?"
대답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랬소?"
그러자 남정네의 희멀건 눈동자에 섬뜩한 기운이 어리는 것이 아닌가.
증오와 저주의 눈길이었다.

그런 시선으로 자기를 노려보자,사이고는 등골이 으스스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거구의 대장부인 사이고가 그정도의 눈길 앞에
움츠러들리 만무했다.

"뭘 잘못했기에 누가 당신을 이렇게 묶어놓았느냐 말이오?"
그제야 남정네는 입을 뗐다.

"누가 이랬는지 몰라서 묻소?"
힘없는 목소리였지만,반감이 가득 서린 그런 어투였다.

그말에 사이고는 뻔한 사실을 물었구나 싶었다. 섬사람을 이지경으로
가혹하게 다룰 수 있는게 관원 아니고 달리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음-"
사이고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아마 당신이 나쁜 짓을 해도 보통
나쁜 짓을 한 게 아닌 모양이죠? 이 지경으로 벌을 준 걸 보니" 하고
말했다.

"뭐라구요?"
남정네의 입에서 이번에는 제법 힘이 박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럼 나쁜 짓을 안했는데 이래 놓았다는 거요,뭐요?"
그러자 남정네는 악에 받친 듯한 어조로 지껄여댔다.

"사탕수수를 좀 먹는 것도 죈가요? 남의 밭의 것을 훔쳐먹은 것도
아니고,자기 밭의 것을 자기가 먹는 것도 죄냐 말이요?"
사이고는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내 어린 딸년이 우리 밭의 사탕수수를 꺾어서 좀 먹은 모양인데,그게
죄라고 애비인 나를 이렇게."
남정네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니,그게 정말이요?" "정말이라구요. 세상천지에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이오?" "음-"
사이고는 절로 고개가 떨구어졌다. 유구무언(유구무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