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가치관 태도 등에서 공통분모가 줄어들고
감시체계는 일상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비인간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타인을 강제하는 비가시적인 장치나 힘"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양식전반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구씨의 진단이다. 권력은 오히려 그
권력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전달되고 실현된다는 미셀 푸코적 인식에
바탕한 그의 이러한 진단은 일상 속에서 끔찍한 권력이 싹트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불구소설은 이러한 미세권력분석의 도구로 사용됐다.
소설이라는 양식자체도 정형화된 서사구조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할
무엇인가를 강제하는 미세권력의 하나임을 보여주려는게 그의 의도.

이번 작품집에는 표제작을 비롯 "아이 엠 어 소피스트""죽은 시인의
사회""테러,테러리스트,테러리즘""아래 문건을
기각함""공습경보<우리드마으에>""스프링클러의 사랑"등 불구소설 7편을
제1부에 묶었다.

이 7편의 작품들은 각각 경계근무 중 오인사살된 한 병사의 피격사건
개요를 적은 군사보고서,모금융정보홍보실과장에 대한 정보기관의
개인관찰보고를 수록한 컴퓨터파일,학생행동관찰기록연구보고서,
연구저작물 배타적사용권설정계약서 사체검안서,민방위훈련방송이 뒤섞인
라디오가요프로그램녹음 등을 설명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건조한
보고서 계약서 컴퓨터파일등을 통해 독자가 자유롭게 해석할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나의 이미지나 주제를 강요하고 전달하려했던 기존
소설문법의 권위에 대한 폭로다.

"불구소설을 20여편정도는 써볼 계획이었습니다. 전문독자를 제외하고는
식상해하는 독자가 많아 92년말부터는 전통적 소설문법을 수용하는 소설을
써오고 있습니다"
독자는 소설을 파격적 실험이나 새로운 시도 보다는 감동으로 대하기
때문에 불구소설의 스타일로는 전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

이 책 2부에 수록된 "노래""개소문""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자공,
소설에 먹히다"등 근작 중.단편들은 개인내부의 권력의지,파시즘적 요소를
지적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변화가 빠른 다중적 사회구조에서 소설도 항상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작가 신세대작가 등 어느 분류도 개의치 않는다는 구씨는
형식실험위주의 성급한 시도는 지양해야겠지만 90년대적 삶을 수용한다는
전제하에 새로운 내용을 담을 새로운 형식을 찾는 일은 부단히
계속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