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바위인들 무쇠인들 자르지 못하리. 무사가 나라 위해 칼
휘두르면."이라는 우국충정의 시구가 새겨진 칼집에서 마침내 시퍼런
대검을 뽑아들고 행렬의 왼편으로부터 이이나오스케의 가교를 향해
비호같이 돌진해간 지사에몬은 허겁지겁 가교를 막아서며 맞서는 호위병 두
놈을 우선 무 자르듯 간단히 쓰러뜨렸다. 그리고 눈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려놓은 가교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시퍼런 불을 켠 듯한 그의
눈에는 오직 가교가 보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너 이놈!"
고함소리와 함께 옆으로부터 칼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자가 있었다.
"도모메쓰케"(공목부:호위병 감찰역)인 가와니시(천서)였다. 그는
쌍수검(쌍수검)의 명수로,이이나오스케의 부하 가운데 으뜸가는
검객이었다.

오른손에는 대검을,왼손에는 "와키사시"(협차:보조용의 작은 칼)를 든
그가 눈을 부릅뜨고 맹수처럼 달려들자,순간 지사에몬은 훌쩍 뛰어 날쌔게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두 손으로 대검을 불끈 거머쥐고
정자세로 그 쌍검객(쌍검객)과 맞섰다.

결코 지사에몬도 만만한 검객이 아니었다. 시현류(시현류)의 솜씨로
가와니시의 목줄기를 비스듬히 냅다 내리쳤다. 재빨리 가와니시는 왼손의
와키사시로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오른손의 큰칼로 지사에몬의 몸뚱이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듯 휙 옆으로 바람을 끊었다. 지사에몬은
훌쩍 하늘로 뛰어오르며 그 칼을 피했다.

하늘에서 요란한 천둥이 울리고,난데없이 바람이 휘몰아쳐 눈발이 날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용케도 사나운 눈발이 지사에몬의 등 뒤로부터
가와니시의 전면을 향해 날렸다. 온 얼굴에 눈발이 휘몰아치자
가와니시는, "으윽-" 하면서 주춤거렸다.

그 기회를 지사에몬이 놓칠 턱이 없었다.

"에잇!"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이번에는 그의 정수리로부터 수직으로 사정없이
일격을 가했다.

"으악!"
가와니시는 대갈통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그를 보기좋게 해치운 지사에몬은 시뻘건 피에 젖은 대검을 번쩍
쳐들고,이빨을 허옇게 악물며 냅다 가교를 향해 돌진해 갔다. 눈에 시퍼런
불이 켜진 한 마리 맹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