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석은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할수 있는가하면 대통령의 "경제대통령"
으로 군림이 가능하다. 반면 말그대로 대통령의 "경제개인교사"로 만족할
수도있다.

경제수석의 위상을 결정하는데는 여러요인이 작용한다. 경제수석개인의
스타일도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대적 상황도 위상을
좌우한다.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이나 경제정책의 실무사령탑인 부총리와의
역학관계도 변수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최고통치권자의 뒷받침이다.
대통령집무실의 문고리를 "자연스럽게"잡아당길수있는만큼 대통령의
신임여부가 절대적이다. 이는 경제수석의 행보에서 쉽게 읽을수있다.

최고통치권자의 힘을 바탕으로 대통령부의 경제대통령으로 행세했던
인물로는 우리나라 경제수석의 "효시"인 3공때의 김학렬씨와 정소영씨등이
꼽힌다. 5공때의 김재익씨나 사공일씨,6공때의 문희갑씨와 김종인씨도 이
반열에서 결코 뒤질수없는 "명경제수석"이다.

특히 5공출범과함께 경제수석에 오른 김재익씨는 5공의 "안정론"을 입안해
밀어붙인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그는 대통령과도 타협안하는 "독불장군"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사공일씨도 대통령을 대신해 경제정책을 챙겼다. 나중에
재무부장관으로 옮겼던 사공수석은 "재무부장관은 수석에 비하면
한가했다"고까지 말할정도로 역할이 컸다. 국제그룹이 해체된것도 그가
경제수석을 할때의 일이었다.

6공두번째 수석이된 문희갑씨도 막강한 실세였다. 결코 힘이 약하지않던
조순당시부총리로 하여금 사표를 내던지게 한것도 경제정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엿보게한 대목이었다. 문수석의 무소불위한 파워는 노대통령이
차관급이었던 그를 장관으로 격상시킨데서도 알만하다. 문희갑씨의 자리와
권한을 그대로 인계받은 사람이 그대로 인계받았다는게 김종인씨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반면 기억에 남을만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이들도 많다. 5공말기의
박영철씨를 들수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이던 박씨는 5공경제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수석자리에 "잡혀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공초기의 박승씨나 말기의 이진설씨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민주화라는
사회적분위기로,이씨는 최각규부총리의 "독주"로 힘한번 변변히 쓰지못하고
물러나야했다.

경제수석비서관이 처음 생긴것은 지난68년이다. 경제성장에 정권의
"사활"을건 박정희대통령의 구상에서였다. 이후 이자리를 거친사람은
현재의 박재윤수석을 포함,모두 19명이다. (장덕진 정소영 김용환
이경식씨는 두번씩 역임,최장수수석은 오원철씨로 8년1개월재임).

이들은 국가경제를 주무르면서 대통령의 성향이나 시대상황에 따라
"사이드 잡"을 갖기도 했었다. 자의건 타의건 정치자금조성등 "악역"을
맡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뒷날 문제가 생기면 최고권력자를 대신해
"흙탕물"을 뒤집어쓰기도했다.

3공과 유신시절의 경제수석은 경제정책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관료출신이 대부분이었다. 자립경제의 틀을 마련하기위해선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5공때부터는 체계적으로 공부한 관리나 학자출신이 수석자리에
올랐다. 경제이념이나 철학을 정립하는것에 중점을 둔탓이다. 현재의
박재윤수석도 여기에 속한다.

차관급이면서도 경제장관을 지휘하는 경제수석. 그들이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하든,대통령의 개인교사로 머물든 그것은 별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보다. 그들이 남긴 한때의 족적이 두고두고 한나라
경제사에 깊은 골을 파게할수 있기 때문이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