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된 MBCTV의 주말연속극 "아들과 딸"은 70~80년대 우리네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성공해 인기를 모았다.

교복 교모 장발 판탈롱 음악다방 달걀꾸러미 등으로 그려진
"촌스러운"모습들이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임을 보여줬다.
그 시절을 "순박한 사람들이 많았던 호시절"로 그리워하는 세대와 "끔찍한
가난의 악몽"으로 여기는 세대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공존하고 있다.

일보다는 여가를 소중히 여기는 세대가 사회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다. 컴퓨터업종 광고업계등 경험과 년공보다는 새로운
지식과 탄력있는 감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상하관계보다 수평관계가
중요시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상하질서의 붕괴는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누구라도
마땅하다고 여기는 일"이 가치기준이었지만 이제 그런 당위는 "왜"라는
질문에 부딪친다. "쟤들은 왜 저러냐"는 구세대의 질책과
"좋아보이잖아요"라는 신세대의 반발이 공존,대결하며 사회 각분야가
아노미적 홍역을 겪고 있다.

문화분야에서도 탈권위주의의 조짐이 구체화되고 있다. 진지한 고급문학
엘리트문학이 진정한 문학이던 시대는 새로운 "문인"들에 의해 깨지고
있다.

"신세대작가""60년대산 작가"라고 불리는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고 있다. 장난스럽다는 이유로
금기시돼던 광고카피와 영화적 요소를 도입하고 그것을 기법이라고
주장한다.

실력으로 문단에서 인정받고 재미로 독자에게 다가가며 80년대 까지의
"진지한 고급문학"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언어의식과
문학관이 권위주의와 엄숙주의의 벽을 넘어서고 있는 것(평론가
이경호)이다.

중심에서 이탈돼 중심의 눈치만 살피던 변두리인들이 중심을 공략하고
있다. 질서의 파괴가 개성표현의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잡지공모나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단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문인행세를 하기 어려웠다. 서점도 문인 비문인을 분명히
구별,비문인의 책은 한쪽켠에 전시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서점가를 풍미한 역사소설작가와 연애시집시인들은
대부분 정식등단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들이다. 기존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등 문인들이 자기네 질서속으로 들어올만한 인물을
선별했던 등단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바로 독자와 만나는 것이다. 무협적
서술,황당한 전개,낯간지러운 연애담등 기존문인들이 꺼리고 하찮게 여기던
것들을 서슴없이 다룬다.

권위주의의 특징중 하나인 엄숙주의도 사라져가고 있다.
"이xx아""죽일x"등 부호로 가려졌던 욕설이 리얼리티를 살린다는 이유로 더
자극적으로,또 자주 등장한다. 성묘사도 마찬가지로 더욱 노골적이 되고
있다.

인기그룹 "들국화"의 긴머리가 문제돼 방송출연이 어려웠던 것이 몇해전의
일이다.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5공시절 어떤 탤런트는 방송출연의 제한을
받아야 했다. 6공당시 "나를 소재로 하는 코미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던 노전대통령의 소망도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얀 전쟁"이 제작돼 월남전에 대한 금기도 깨지고 있다. 대통령을
주인공으로한 유머집이 출간돼 초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것도
탈권위주의의 상징이다.

문학가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목들이 견제받으며 세대교체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 평론가 임우기씨는 "문예중앙"여름호에서 "매개의 문법에서
교감의 문법으로"라는 평론을 통해 "문학과 지성"의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씨등 소위 4K의 문체론을 극복돼야할 오류로 비판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작가 이문열씨도 스스로 "문학적 야심의 참담한 시신처럼 보인다"고
우려한 작품 "오디세이아 서울"의 출간으로 "문예중앙"과 "창작과 비평"
최근호에서 혹평을 받고 있다.

"감히,어떻게"의 통념을 깨는 것은 이제 용기가 아니라 개인의 자의적인
선택이다. 제3의 의견을 양비 양시의 회색논리로 몰아치던 분위기는 이제
힘을 쓰지 못한다.

문화비평가들은 이를 80년대말 세계문화에 지각변동을 초래한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분법의 소멸은 다양성
창출의 여지를 열었다.

정치적 외침과 행정적 제도 조치와 상관없이 권위주의는 사라지고 있다.

현실을 반영하는 안테나가 가장 민감한 문화분야에서 그 뿌리가 베어지고
있다. 그러나 신세대작가들의 윤리적 결함을 문제삼는 비평가들의
지적처럼 자칫 권위주의의 붕괴가 구심점의 상실로 연결돼 문화적,사회적
가치전도 만을 부추길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권위적 질서가 붕괴된 터전위에 아직 새 질서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는
어중간한 모습이 우리 문화계의 현실이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