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에 "사사건건"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8일 경제기획원 관계자들과
신경제5개년계획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열게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있다.

정부가 과거 재야단체로 취급했던 경실련과 공식적인 정책협의를 갖는것은
처음인데다 바로 같은날 열리기로 돼있던 경제5단체장과의 회합은
무기연기된 상황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있다.

경제5단체완 연기
그동안 정부가 정책결정을 앞두고 주로 재계나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민간의견을 수렴해왔던데 비하면 "신경제 신기류"라고 할정도로 정책결정
패턴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경실련은 8일 오후2시 종로5가 경실련강당에서 강봉균경제기획원차관보등
기획원관계자 5명을 초청,신경제계획작성지침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강차관보와 이근경종합기획과장
조학국자금기획과장 김윤광산업2과장 소일섭조정총괄과장등 정책실무자들이
참여,경실련측 교수들과 신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토론을 벌인다.

물론 그간 한국개발연구원(KDI)등이 주최하는 정책협의회등에
경실련관계자들이 참석,이들의 목소리를 간헐적으로 개진하긴 했지만 역시
소수의견에 그쳤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에 기획원 실무자들과
경실련이 신경제정책에 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 질만하다.

특히 이날 예정돼 있던 이경식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등 경제장관들과
전경련등 경제5단체장들과의 신경제정책협의가 돌연 연기된 것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는 경제정책입안과정에서 거의 "유일한"협의
파트너였던 재계외에 경실련등 시민단체가 정부의 정책협의채널로 새롭게
등장했다는 상징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부총리등 경제장관과 경제5단체장의 모임이 연기된 것은 표면적으론
박용학무협회장이 9일 중국을 방문하는데다 김철수상공 자원부장관도
외부강연이 잡혀있기 때문이라는것. 그러나 최근 재계가 처한 입장을 보면
이 모임의 연기를 단순히 지나쳐 버릴 것만도 아니다. 대선후유증에
시달리는 현대,계열사 사장과 부회장이 구속된 삼성과 럭키금성은 물론
노소영부부사건등으로 선경까지 사정이 복작하게 얽혀있어 재계대표들이
공식석상에 나타나 정부정책에 가타부타 떠들기가 껄끄럽게 돼있는게
요즘의 분위기라면 분위기다.

사실 경실련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한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10일 강철규교수등 경실련대표들은 서울모
음식점에서 서상목 정책조정실장등 민자당관계자들과 정책협의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정책협의회에는 기획원관계자들이 대거 경실련강당으로
찾아가 참석해 경실련측도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경실련관계자는 "그동안 경실련이 정책실무자들과 토론기회를
마련할때마다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정부측이 이번 토론엔 선뜻 응해와
뭔가 달라졌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장승우경제기획원 기획국장도 이에대해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한
신경제계획입안과정에서 경실련과 같은 시민단체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것 아니냐"며 "앞으로도 정책결정의 경직성을 지양하고 다양한
민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할것"이라고 밝혔다.

경실련도 이날 토론회에서 그간의 맹목적인 비판보다는 신경제계획에 대해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달 긴급기자회견까지 갖고 "전국토의 투기장화 계획"이라고
비판했던 토지계획부문에 대해서도 입장이 바뀐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경 실련은 개발가능 토지공급을 대폭 확대하는 신경제 토지계획에
대해 "이는 망국적인 부동산투기를 유발,우리경제를 더욱
왜곡시킬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었다.

그러나 이번 정책토론회에선 이같은 입장을 전면 수정,"토지공급확대"라는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방향에 기본적으로 동의할 모양이다. 다만
개발이익환수제등 토지공개념을 보다 확대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경실련은 "토지개혁문제"를 놓고 내부의 농업분과위와 토지분과위에서
장시간 내부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반대의견을 냈던것은
농업분과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나중에 토지분과위원들이 크게 반발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경실련의 이같은 입장전환에는 기획원측과의 사전조율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일저녁 강봉균기획원차관보 장승우기획국장등
기획원관계자들은 강남방배동의 음식점(청학동)에서 경실련 교수들을
초청,정부계획을 설명해 이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아무튼 정부가 과거 백안시했던 경실련과 신경제계획을 협의하는 것은
새정부의 "신경제이념"에 비추어 극히 당연한 일로 볼수있다. 앞으로
경실련 전경련과 각각 정책협의를 갖게될 기획원이 어느 쪽의 정책건의를
더 많이 수용할지 두고볼 일이다.

<박영균.차병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