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와 "노"를 제대로 분간하면 영어는 웬만큼 통달했다는 얘기가
있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일본인의 "예스"와 "노"가 다시금 문제가
되고있다.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이달초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일본인들의 "예스"는 실제 "노"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본을 내놓고 비방했다. 협상때는 곧 잘 "예스,예스"하지만 돌아가서는
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들과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미국 비즈니스맨들 가운데는 일본인들을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이도 적지않다. 이런 분위기에 얹혀
클린턴정부의 로널드 브라운상무장관은 "일본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식의
"일본 불가론"으로 비약한다.

지난주 동경을 방문한 그는 일본에 관한한 "백약이 무효"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장개방압력과 관세인하등 수년간의 끈질긴
무역자유화협상으로 이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무역장벽이 낮추어지는등
성과가 손에 잡히고 있지만 유독 일본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난공불락이라는
것이다. "예스"와 "노"가 분명치 않고,될것 같으면서도 막상 되는일이
없는 협상과정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협상포기선언이다.

이시하라 신타로의 절규처럼 일본인들은 아예 안되는 것을 왜 "노"라고
잘라 말하지 않는가. 그들 나름의 구린 속사정 또한 적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에 문화적 갭이 한 몫 한다는 이색 분석도 끼여든다.

일본의 작가 하츠미 레이코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고에서 일본인의
"하이(예스)"에는 특유의 언어문화가 담겨있다고 해명한다. 일본인의
"예스"에는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생각해 보겠다"는 유보가 더
강하다고 그는 주의를 환기시킨다. 일본인들은 상대방의 제의를 듣고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면 우선 "하이"라고 답하는 것을 예절로 알고있다. 이
때의 "하이"는 그런방향으로 노력해 보겠다는 뜻이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의 다음단계는 생략되기 일쑤라고 한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도 동경지역에서는 "진지하게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통용되는 데 반해
오사카지역에서는 경우에 따라 "어림없는 노"로 통한다는 설명이다.

클린턴은 취임이후 줄곧 일본에 대해 행동보다는 말이 더 거칠고 이같은
강성 발언을 일본도 이제 강성의 "노"로 받아칠 기세다. 국내정치적인기를
의식한 서로간의 정치게임에 멍드는 것이 경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