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업] <이렇게 뛰고있다> (5) ICI..회사분리 극약처방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2월24일 런던중심가에 위치한 ICI(임페리얼 캐미컬 인더스트리)사
본부 중역회의실.
멀리 템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 ICI이사진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겨드랑이에 서류묶음을 한아름 낀채였다.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중역회의실 밖에는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은 그날 ICI 역사에 또다른 획을 긋는 중요한 사안을 결의해야 했다.
결의안은 회사를 2개로 분리한다는 것.
회의도중 일부 이사들의 이견제시도 있었다. 그러나 데니스 헨더슨회장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대세는 가결쪽으로 기울었다. 결과는 "승인"이었다.
영국최대화학.의약업체인 ICI가 신ICI와 신규회사인 "제네카"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의 내용은 제네카가 의약.농화학 특수화학등 생화학 관련 분야를
전담하고 새롭게 태어난 ICI는 페인트 에틸렌등 공업 화학제품만을
취급한다.
이와함께 ICI는 제네카의 납입자금으로 10억파운드 상당의 주식을
발행한다.
지난 67년간 영국화학업체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던 ICI가 왜 회사를
쪼개야하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는 국제 화학산업의 침체로부터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뜻에서이다.
지난 85~88년사이 호황을 구가했던 유럽 화학업계는 89년중반부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지난 90년 걸프전쟁으로 경기가 잠시
회복됐었으나화학제품 수요는 다시 급감하기 시작했다. 속속 개발된
신소재의 등장,대체재인 목재 유리제품의 시장잠식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기침체로 수출이 줄었다.
더욱이 부시행정부 집권기간중 미국의 시장보호정책으로 판로가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등 아시아국가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91년
아시아지역(일본제외)화학업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선. 이는 96년
12%,2000년에는 4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ICI의 경영실적은 악화될수 밖에 없었다. 작년 ICI의 세전수익은
약5억9천만달러. 이는 전년에 비해 무려 35%나 감소한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키위해 헨더슨회장이 작년7월에 내린 극단적인 처방이
회사 분리였다.
회사분리의 첫번째 목표는 업종 전문화를 내용으로 하는
집중화(concentration).
기존 ICI는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상호
연관성이 적은 업종을 하나로 묶은데서 발생 문제였다. 또한 경영이
지나치게 방만해 업무의 효율성도 저하됐다.
핸더슨회장은 이사회장에서 "해충 면역농작물의 개발과 에틸렌을
생산하는것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가. 차라리 이를 분리,특화시켜야
한다"라고 반대자들을 설득시켰다. 기업은 가급적 한분야의 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또한 기업을 분리할 경우 약9천명의 인원을 감원할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도 역설했다. 새 ICI는 이번 분리와 함께 7천명을,제네카는
2천명을 각각 해고할 계획이다.
둘째는 흡수.합병(M&A)을 통한 기업확대를 용이하게 하자는것. 한 업종에
특화한 기업은 동종 기업을 인수하는데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기존 ICI는 회사내 서로 다른 부서간의 견제로 해외기업 인수에
장애가 많았다.
새ICI와 제네카는 유럽 미국등의 현지 기업 인수및 제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소비시장에 더 가까워지자는 취지에서이다.
셋째는 증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제네카는 분리와 함께 구ICI의 부채를 대부분 떠맡게 된다. 새로
태어나는 ICI의 재무제표에 부채액의 상당폭이 줄어드는 셈이다.
대신 제네카는 10억파운드의 주식발행대금으로 부채일부를 갚고 기업을
꾸려나가게 된다.
분리안을 직접 구상한 핸더슨회장은 이 조치가 오히려 늦은 것이라고
말한다.
ICI는 지난 1926년 독일의 여러 화학업체들이 "IG 파벤사"로 통합된데
자극받아 설립되었다. 독일의 통합에 대한 영국의 대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직후 IG파벤은 헥스트(Hoechst) 바이에르(Bayer)BASF등
3개사로 나누어졌다. 이들 3개회사는 그후 화학 의약업계에서 유럽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로 성장해왔다.
결국 ICI의 분리는 "이같은 세계추세에 순응하는것"이라는게 핸더슨회장의
주장이다.
ICI가 업종특화 위주로 분리됐다해서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그간 ICI의 경영을 압박했던 요인은 변하지
않고있다.
다만 ICI가 비만증을 치료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꿈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한우덕기자>
본부 중역회의실.
멀리 템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 ICI이사진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겨드랑이에 서류묶음을 한아름 낀채였다. 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중역회의실 밖에는 수십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들은 그날 ICI 역사에 또다른 획을 긋는 중요한 사안을 결의해야 했다.
결의안은 회사를 2개로 분리한다는 것.
회의도중 일부 이사들의 이견제시도 있었다. 그러나 데니스 헨더슨회장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대세는 가결쪽으로 기울었다. 결과는 "승인"이었다.
영국최대화학.의약업체인 ICI가 신ICI와 신규회사인 "제네카"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의 내용은 제네카가 의약.농화학 특수화학등 생화학 관련 분야를
전담하고 새롭게 태어난 ICI는 페인트 에틸렌등 공업 화학제품만을
취급한다.
이와함께 ICI는 제네카의 납입자금으로 10억파운드 상당의 주식을
발행한다.
지난 67년간 영국화학업체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던 ICI가 왜 회사를
쪼개야하는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는 국제 화학산업의 침체로부터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뜻에서이다.
지난 85~88년사이 호황을 구가했던 유럽 화학업계는 89년중반부터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지난 90년 걸프전쟁으로 경기가 잠시
회복됐었으나화학제품 수요는 다시 급감하기 시작했다. 속속 개발된
신소재의 등장,대체재인 목재 유리제품의 시장잠식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기침체로 수출이 줄었다.
더욱이 부시행정부 집권기간중 미국의 시장보호정책으로 판로가 거의
막히다시피 했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등 아시아국가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91년
아시아지역(일본제외)화학업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선. 이는 96년
12%,2000년에는 4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ICI의 경영실적은 악화될수 밖에 없었다. 작년 ICI의 세전수익은
약5억9천만달러. 이는 전년에 비해 무려 35%나 감소한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키위해 헨더슨회장이 작년7월에 내린 극단적인 처방이
회사 분리였다.
회사분리의 첫번째 목표는 업종 전문화를 내용으로 하는
집중화(concentration).
기존 ICI는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다. 상호
연관성이 적은 업종을 하나로 묶은데서 발생 문제였다. 또한 경영이
지나치게 방만해 업무의 효율성도 저하됐다.
핸더슨회장은 이사회장에서 "해충 면역농작물의 개발과 에틸렌을
생산하는것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가. 차라리 이를 분리,특화시켜야
한다"라고 반대자들을 설득시켰다. 기업은 가급적 한분야의 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또한 기업을 분리할 경우 약9천명의 인원을 감원할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도 역설했다. 새 ICI는 이번 분리와 함께 7천명을,제네카는
2천명을 각각 해고할 계획이다.
둘째는 흡수.합병(M&A)을 통한 기업확대를 용이하게 하자는것. 한 업종에
특화한 기업은 동종 기업을 인수하는데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기존 ICI는 회사내 서로 다른 부서간의 견제로 해외기업 인수에
장애가 많았다.
새ICI와 제네카는 유럽 미국등의 현지 기업 인수및 제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소비시장에 더 가까워지자는 취지에서이다.
셋째는 증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제네카는 분리와 함께 구ICI의 부채를 대부분 떠맡게 된다. 새로
태어나는 ICI의 재무제표에 부채액의 상당폭이 줄어드는 셈이다.
대신 제네카는 10억파운드의 주식발행대금으로 부채일부를 갚고 기업을
꾸려나가게 된다.
분리안을 직접 구상한 핸더슨회장은 이 조치가 오히려 늦은 것이라고
말한다.
ICI는 지난 1926년 독일의 여러 화학업체들이 "IG 파벤사"로 통합된데
자극받아 설립되었다. 독일의 통합에 대한 영국의 대응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직후 IG파벤은 헥스트(Hoechst) 바이에르(Bayer)BASF등
3개사로 나누어졌다. 이들 3개회사는 그후 화학 의약업계에서 유럽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로 성장해왔다.
결국 ICI의 분리는 "이같은 세계추세에 순응하는것"이라는게 핸더슨회장의
주장이다.
ICI가 업종특화 위주로 분리됐다해서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그간 ICI의 경영을 압박했던 요인은 변하지
않고있다.
다만 ICI가 비만증을 치료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꿈으로써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다.
<한우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