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있는 삼성전자가전공장은 올들어 "강한 상품만들기 5원칙"을
세웠다. 독창적인 기술을 응용,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되
튼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회사는 또 주요가전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18~20개월에서 평균24개월로 연장하고 모델수도 축소해나가고있다.

대우전자는 "제품성격에 충실하자"며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을 구호로 내걸었다. 복잡한 기능을 하나씩 추가,신제품을 선보이기
보다는 기능이 단순하면서도 견고한 가전제품을 소비자에 팔겠다는
전략이다.

국내가전업계의 이같은 움직임은 컬러TV등 주요가전의 보급률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만들면 팔리는 시대"는 지나간 지금 잦은 모델변경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겠다는 실용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HDTV등 수요층을 확대할수있는 신제품이 나올때까지 양적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국내가전업체들은 올들어 이처럼 다양한 체질개선방안을
동원,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있다.

지난 9월부터 삼성전자 금성사 대우전자등 가전3사가 잇따라 "슬림화"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한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있다.

삼성전자는 지난9월 사업부1부1과의 조직체제를 단순화,팀제로 전환했다.
한달후 금성사는 소사업부(OBU)란 개념을 도입,13개사업부를
29개소사업부로 조직을 완전히 개편했으며 대우전자도 금성사와 유사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3사는 모두 "급변하는 국제여건에 신속히 대응하기위해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을 단순화했다"고 밝혔으나 조직대수술에 따른 인력감소를
유도하는 "감량경영"전략을 밑바닥에 깔고있다. 의사결정의 순발력도
키우고 인건비도 줄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가전업계가 사업다각화에 나선것도 올들어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중
하나이다.

삼성전자는 6백억원을 투자,국내에서 SKC가 독점공급해온
CD(콤팩트디스크) LD(레이저디스크)등 소프트웨어산업에 진출했다. CDP및
LDP수요를 확대하기위해서는 수입에 의존하는 LD등을 자체생산,보급량을
늘리는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른것이다. 이회사는 또 소형가전제품용
니켈 수소계 배터리도 생산하고 자회사인 광주전자를 통해
전동공구사업에도 진출했다.

금성사는 정보가전과 LCD(액정표시장치)를 신규역점사업으로 정하고
대화형CD(CD-I)초박막LCD의 실용화에 노력하고있다. 대우전자도 CD-
I플레이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사업 참여도 검토중이며 94년부터는
비디오화상전화기도 양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독점공급한 LDP분야에 금성 대우 인켈 태광등이
앞다투어 뛰어들고있는것도 기존주력제품의 성장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가전업계가 소비자중심의 경영을 펴기 시작한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전자는 개발과정에 있는 제품의 상품화 여부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실소비자인 주부사원이 갖는 "소비자 품질인증제"를 도입 운영하고있다.
금성사는 "소비자가 만드는 제품"제도를 확대하고 있으며 대우전자등 여타
가전업체들도 "주부모니터제"를 강화해 나가고있다. 특히 금성사의 경우
제품개발과정에 항상 소비자를 염두에 두겠다는 뜻으로
"고객결재란""고객의 자리"를 마련해 놓기도 했다.

그결과 삶는 세탁기,둥굴이 청소기,된장찌개용
전자레인지,김치냉장고,물걸레청소기등 우리 문화에 맞는 가전제품이 대량
개발되어 "한국형"바람을 일으키고있다.

가전업체들이 자가브랜드수출비중을 높이기위해 해외시장공략을
강화한것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선진국의 반덤핑시비등에 대비,80년대
후반부터 해외현지공장을 건설해온 국내가전업체들은 올들어
해외판매법인설립이나 브랜드독접판매계약확충에 눈을 돌린 한해였다.
이에따라 금성사는 고유상표수출비중을 지난해 60%에서 67%로,삼성전자는
55.5%에서 61.9%로,그리고 대우전자는 25%에서 35%로 끌어올렸다.

나름대로 해외에서 자가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밖에 신입사원채용축소,밀어내기식 판매방식지양,품질수준향상을 위한
중소협력업체지원강화,핵심부품의 자체개발등 가전업계가 다양한 자구책을
동원,양적 질적성장 정체시대에 살아남기위해 안간힘을 쏟은 한해였다.

그러나 일본이 80년대 중반 급격한 엔화상승을 극복하고 "가전왕국"의
자리를 지켜낸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됐다는 사실을 감안할때 기술개발이
따르지않는 자구책은 한계가 있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일본기업이 우리가전산업을 마약중독자로 만든셈이다. 일본측으로 부터
손쉽게 기술을 얻어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기술자립능력이 극도로
약화된것이죠. 값싸게 기술을 얻는 시대가 지난 지금 기술자립능력을
키우는것만이 우리가전산업이 살아나는 길입니다" 김광호삼성전자사장의
이말을 곱씹어야 할때에 이른것이다.

<김영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