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기사 하나가 사뭇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건기사에 대한 충격은
웬만큼 면역이 됐지만 모처럼 색다른 양심이 두드러졌기에 가슴팍이
뜨끔했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면 기사거리가 안되고,거꾸로 사람이 개를
물었다고 해야만 기사거리가 되는 이 불감증의 세태는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수업중에 카드놀이를 하는 제자의 팔을 때려 왼팔에
금이 가게한 동작중 전영애교사(45.여)가 17일 오전5시쯤 잠원동 아파트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제자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으나 인천에 사는 이군
부모의 폭언을 듣고,죄책감과 모욕을 괴로워한 끝에 스스로 절명의 사죄를
한 것이다.

평소에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독실한 가톨릭신자,사죄의 길이 그것밖에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매맞은제자가죽을 병에 든것도
아니고,자신도 고교생 남매의 어머니였음을 생각할때,"살신성인"의 방법이
그길 밖에 없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자식이 귀엽다고는 하나,올바로 가르치기 위해 매를 들었던
교사에게 "네가 선생이냐"하며 막된 말을 쏘아 붙인 부모의 행실에도
반성할 점이 많다. 얼마전에도 학교에서의 체벌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응답자의 60% 이상이 찬성한 것으로 기억된다. 스승이 제자에게
베푸는 사랑의 매는 인위적으로 막을것이 못된다. 파리의 백화점에서도
회초리를 판다. 세계최고의 교육이론조차 사랑의 회초리를 금지시키지
않는다.

최근 우리의 교육풍토는 일그러진 구석이 많다. 제 자식에게 매질을
했다고,성난 학부모가 몰려가 수업중인 교사를 폭행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돈봉투의 거래와 교권타락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다시피 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옛말에도 있다. "생자비난 양자난,양자비난 교자난"(자식을 낳는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기르는것이 어렵고,기르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이 더
어렵다)-부모들의 과보호가 결국은 자식의 앞날을 망쳐놓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전교사의 죽음은 때묻지 않은 그의 교육관과 양심
때문이었다. 남에게 안겨준 사소한 상처가 마침내 그의 생을 마감할만치
가냘팠던 심성의 소유자,그가 끼친 교육계의 충격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