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변호사 김일두씨(70). 검사생활 30년 변호사활동 10년등 40여년간을
외길로 법조계에서 일해온 사람이다. 48년 고대법대를 나와 2회변시에
합격,법조계에 발을 디딘이래 법무부검찰국장 서울지검검사장
광주고검검사장 대검차장검사를 역임했다. 현역검사시절 "입바른 소리하는

검사""칼날검사"등 별명을 가졌던 그는 서울지검검사장시절엔
김대중납치사건 유옥우씨집등 심야연쇄폭파사건 문세광사건등 굵직굵직한
정치사건의 수사본부장을 맡아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수필집
"알몸인간"기행문 "구름을 헤치고"를 비롯 "세계가 부르짓는 인권"등 많은
저서를 남긴 법조문인으로도 잘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엔 고희출판기념회를 갖고 "억울타 난 죄없어""취미와
인생산책""아쉬운 세월이여"등 3권의 저서를 동시 출간,화제를 모았다.
고대교우회장 아태변호사협한국회장등 많은 직함을 갖고 아직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김변호사를 만나봤다.

-이번 고희출판기념회는 성황을 이뤘습니까.

?김변호사=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졌는데 많은 인사들이 오셔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저서는 변호사 생활 10년을 결산한 무죄변론집
"억울타 난 죄없어"였어요. 이책은 25건의 무죄변론한것을 사례별로
엮은것입니다. "열사람의 죄인을 놓칠지라도 한사람이라도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뛴 것이지요. 사실 이 말은
법조인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왜 활법제민이란 말이 있지요. 억울한
사람을 보호 구제하는 것이 법조인의 사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출판기념회에서 "취미와 인생산책""아쉬운 세월이여"도
내놓으셨지요.

?김변호사="생계 신계 상계 노계 사계"의 인생5계중 이제 노계와 사계에
괘념해야할 시기에 왔다고 봅니다.

나자신으로서는 실감되지는 않지만 70이란 나이가 인생의 종착역가까이
오고말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틀림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살아온
지난날을 뒤돌아 보면서 생을 마무리하는 자서전이라도 써봄직하지
않습니까.

이책은 자서전이랄까요,날아가는 듯한 세월을 원망하면서도 남은 세월을
조금이라도 많이 붙잡아볼까하는 욕구에서 "아쉬운 세월이라"는 원망조의
제목을 붙였지요. 제호는 일곱자로 된 7순의 뜻도 내포하고 있는거지요.

-이책에서 문세광수사사건에 대한 회고록같은 것을 기록한것으로
알고있는데요.

?김변호사=서울지검검사장은 재직평균수명이 1년전후라고 알고있으나 내가
서울지검검사장으로 있을때까지 제일 오랬동안 검사장으로 재임한 분은
3년7개월 근속이었던 이봉성검사장이었고 그다음 두번째로 2년6개월 근속인
나였어요.

이기간중 나는 정치적인 사건으로 김대중납치사건과 문세광사건을
맡았지요. 그래서 문세광수사회고록을 이번 저서에 담은 것입니다.

-문세광사건말씀을 하셨는데 육영수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탄에
죽지않았다는 얘기가 한때 화제가 된적이 있지않습니까. 당시
수사본부장으로서 하실 얘기가 있습니까.

?김변호사=그때 서울지검장으로 수사를 총지휘했어요. 오랜세월이 지나서
밑도 끝도 없이 왜 그얘기가 나왔는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그때
이사건의 조사관이었던 정치근씨등이 생존하고 있고 수사기록도
남아있어요. 문세광이가 사형당할때 한 최후진술을 녹음해 지금도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문세광이도 자기입으로 검찰수사는 잘못된것이 없다고
말했어요.

-문세광이의 최후진술녹음을 들려 주실수 있습니까.

?김변호사=지금 녹음테이프는 집에 있어 이자리서 들려줄수는 없고
"아쉬운 세월이여" 25페이지를 보면 최후진술 후반부가 나옵니다.

"집행관=최후로 얘기하고 싶은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문세광=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사형을 집행하는 것입니까. 집행관=그렇습니다.
문세광=나는 바보였습니다(울음소리.). 참으로 박대통령과 육여사에
대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재일교포로서 무엇하나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대통령께 사과드립니다. 대통령에게
총을 겨냥해서 잘못했습니다. 나는 일본에서 조총련놈들에게 속았습니다.
내가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 됐습니다. 참으로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

육여사와 죽은 사람곁에서 같이 살고 싶습니다. 나의 처에게 말씀 전해
주십시오. 아직까지 젊은 나이이므로 재혼하여 제2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씀해주십시오. 장남은 2살이므로 형님부부가 맡도록 전해주시오.
그리고 처는 제2의 인생을 걸어가도록 말씀해주시오. 대통령에게
미안합니다. 한국의 실정을 몰라서 바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재혼했기때문에 어머니대로 인생을 걷도록 말씀해주시오.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다고 말씀해 주시오. 나는 사실 바보였습니다. 울음소리.
처에게는 나쁜짓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대통령과 국민에게 미안합니다.
나는 속았습니다. 미운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만약에 한국에서
커왔다면 조총련에게 속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처에게는 제2의
인생을 걷도록 말씀해 주시오. 마지막으로 아들과 처 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처에게는 될수있으면 육여사 묘소를 참배하도록 말씀해
주시오"
문세광은 정치확신범이었기 때문에 아주 수사에 애를 먹었지요.
최후진술에서 보면 아내에게 제2인생을 걸어갈것을 몇번 부탁했고
박대통령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는 예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번자서전에 대검차장직에서 물러나오게된 특별한 이유도
기록하셨습니까.

?김변호사=내경우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있다가
대전지검검사장으로,서울검사장에서 광주고검장으로,대검차장에서
3년반이나 있으면서 검찰총장으로 승진못하는 인사발령이 있을때 정말로
온당치 못한 인사라고 봤지요. 나자신은 무슨 이유로 인사권자가 그런
발령을 하였는가를 짐작하고 알기도 하지만 얘기할수 있습니까. 흔히
말하는 관운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만 생각할수 밖에 없는
것이고,하지만 대검차장직에서 물러나오게된 이유야말로 정치적 희생양이
된것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던걸로 보고 있어요. 내자신 이렇게 얘기하면
이상하지만 나의 천성이 입바른 소리 잘하는 편이었거든요. 모름지기
법조인은 당장목에 칼이 들어와도 법을 지키며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법질서가 자주 파괴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픔니다.

-법질서가 잘 안지켜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요즘보면 법경시풍조가 만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이세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변호사=갈등과 대립이 사회를 매우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선진국의 종교적신앙 일본의 국왕과 같은 구심점이 우리나라엔 없기
때문이지요. 내경우 경조보근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선친묘소의 외등에 불을 켜주는 일을 몇십년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군사부일체란 말은 아득히 실종된지 오랩니다.

젊은이들이 "40대이상 기성세대는 사라져라 교수 총장 이사장
물러가라"외치는 보도가 자주 보입니다. 부모도 선배도 스승도 몰라보는
이런 위험한 생각이 국법을 무시하는 사상으로 변해가고 사회의 가치관을
상실케하는 원인이라고 봅니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위해 효도정신을
함양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민주화도 법에 따라 민주적으로 해야지
폭력적 방법은 절대 안된다고 봅니다. 정말로 법을 안지키면 손해고
지키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안되고 있다고
봅니다. 한심한 일입니다.

-후배법조인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김변호사=법은 법조인들이 솔선수범해서 지켜야합니다. 외부압력이나
권력등에 굴복하는것은 비겁한 자입니다. 노파심에서 얘기하지만
곡학아세하는 경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변호사=인생 칠십고래희라했지요. 내나이 70이니 남은 여생을 그동안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살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지등으로 죄가 없으면서도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구제하는 활동에 전념하려 합니다.

-바쁜 법조인생활중에서도 취미가 다양한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변호사=취미가 많다보니 잡동사니가 된 기분입니다. 등산 탐석 분재
서예 한국화수집 사진촬영등등..

이중에서도 수석과 사진촬영은 나의 영원한 벗입니다. 누가 말했지
않습니까. 석불언최가인-돌은 말을 하지않아도 가장 좋은 사람이다.
하므로 돌을 감상한다는것은 돌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이대화를
통해 인간의 극기 자제 내핍등 인내심을 기르게 되지요.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 부딪치게 된다 해도 풍상을 겪는 돌과 같이 참으면서
돌뭉치같이 힘을 뭉치고 굳세어져야 한다는것이 나의 "석철학"입니다.
수석을 모으기 시작한것은 지난63년 부산지검차장검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30년동안 수집한것이 줄잡아 몇백점은 될것입니다. 한국수석총연합회장도
맡은바 있어요. 8 무비카메라로 사진찍는것도 빼놓을수 없는 취미입니다.
20년전에 한국8 사진동인회를 조직,철따라 전국 명승지를 촬영해오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8 영화는 30여편이 넘습니다.

<대담=이계홍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