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최고의 사상가이며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박사가 23일
서거했다. 향년 92세.
그의 개인비서인 샬로테 큐비트는 지난 수년동안 병상에 있던 하이에크가
독일남부 프라이부르크시의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74년도 노벨경제학상수상자인 하이에크는 자유시장경제의 옹호자로서
"통화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총수요이론에 바탕을 둔 케인스경제학의 비판가인 하이에크는 공급중시및
작은 정부를 주창하는 신경제학파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하이에크의 경제이론은 레이건전미대통령의 경제정책(레이거노믹스: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기업생산활동조절과 같은 공급측면에서 경제를
이끌어가는것)의 모델이었다. 즉 하이에크는 레이거노믹스를 세상에
내놓은 밀턴 프리드먼미교수의 이론적 선구자였다.
사회주의는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규정한 그의 자유경제이론은 또
대처전영국총리의 경제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처총리가 재임시
막강했던 영국노조의 힘을 크게 약화시켰던것은 하이에크의
조언때문이었다.
하이에크는 자유주의경제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의 제자이다. 그는
정부가 경제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하며 법률은 폐해방지를
위해서만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는 1944년에펴낸"노예에의 길(The Road To Serfdom)"에서
사회주의와 케인스경제학을 비판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하이에크이론은 70년대이전까지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때까지 경제학자들은 성장과 고용을 마음대로 조정할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이에크가 금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중 하나로 떠오르게된 것은 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속에서의 경기침체)이 서방경제를 강타한 후였다.
하이에크는 일반물가수준이나 총수요및 총고용과 같은 집합적인
총량경제정책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면서 상대가격이나
임금체계,즉 총수요와 노동의 분포상태에 초점을 맞춰 경제정책을
수행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하이에크경제학의 핵심은 정부계획에 의해 운용되는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는 한계에 부딪치며 경제적 자유가 없으면 정치적 자유도 있을수
없다는 이론이다.
하이에크는 1899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출생했다. 빈에서
정치경제학박사를 취득한후 1929년 빈대에서 학자와 교수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런던 시카고 프라이부르크 잘츠부르크등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는 50권이상의 책을 저술했으며 논문은 1백50편에 달한다.
주요저서로는 "자유의 본질(The Comstituion Of Liberty)""법.입법 그리고
자유 (Law,Legislation And Liberty)""자만의 운명(The Date Of
Conceit)"등이 있다.
<이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