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전선에서 정부 각 부처, 금융기관, 업계가 좀처럼 손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은행은 종합적인 무역진흥대책에 입각한 수출지원 보다는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보신대책에만 골몰하고 있고 업체들은 힘들여
수출부진을 타개하려 하기 보다는 손쉬운 내수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14일 관계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이후 추진해오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비롯, 각종 수출진흥대책들이 요란하게
발표되고 있으나 실제로 이행되는 일이 드물어 실질적인 수출증대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월4일부터 무역어음 할인규모를 3조원으로 확대키로한
조치도, 현재까지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 은행이 여전히 복잡한 수속을 요구함에 따라 업체의 신용장(L/C)
거래단위가 대부분 1억원 이내인데다가 대기업의 경우 월간 신용장
내도건수가 1천-1천5백건에 달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무역어음이
업체들을 위해 실효성있는 지원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업체의 은행권을 통한 무역어음 이용실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며 각 업체는 비교적 수속이 간편한 단자사를 비롯, 제2 금융권을
통해 일부 무역어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봉제업을 하는 김모씨(45. 서울강남구역삼동)는, 그러나 단자사 등도
신규대출 보다는 기존대출 한도내에서 대출계정만 무역어음으로 대체하고
이율도 꺾기 등의 보상을 요구함에 따라 업체들이 부담해야 하는 실질
금리는 19-20% 선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산업의 경우, 한봉수 상공부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자동차와
함께 수출산업으로 집중육성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금융계의 시각은 전혀
딴 판이다.
제1, 2금융권을 비롯한 전 금융권에서는 컴퓨터 관련산업을 포함한
전자산업 전체산업을 한계산업으로 간주, 각 업체에 대해 기존 신용
대출분에 대해서도 담보 보완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자금 압박에 몰린 중소 전자업체들이 회사채 발행을 위해 어렵사리
증권관리위원회의 회사채 발행허가를 받은 경우에도 지급보증서를
신용으로 발행 받기가 어려워 사실상 회사채 발행도 벽에 부딪치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공업진흥회는 지난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전자수출이 차지한
비율이 27%에 달했다고 밝히면서,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정부도 민간업계에
대한 전체 기술개발자금 지원액중 전자분야에 대한 지원비율을 5.6%에
불과하게 잡는 등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의 경우, 일부 업체가 지난해 16메가D램의 양산체제 구축을 위한
상업차관 도입을 허용해주도록 상공부를 통해 재무부에 요청, 이봉서
당시 상공부장관이 "다른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내에 이를 허용하겠다"고 정부 방침을 공식발표
했으나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 업체의 상업차관 도입신청 사실이 알려지자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상업차관 도입을 신청하고 이어 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업계에서도 상업차관
도입을 신청해오자 특혜시비에 말릴 것을 우려, 정부의 눈치보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가능성을 안고있는
기억 소자 분야의 개발을 위해서는 16메가D램의 개발이 웬만큼 이뤄진
지금이 투자적기라고 지적, 외국은행의 한국업체에 대한 신용평가가 좋은
상태인 현시점에서 상업차관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와 금융기관 간에 이같이 손발이 맞지않고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수출 지원도 그나마 대기업에 편중되는 상황이 지속되자 수출을 포기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그동안 국내생산으로 조달하던 내수용품 조차 외국에서
임가공해 들여오거나 수입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말까지 무역협회에 수출업체 효력확인을 신청한 업체는 전국
2만9천4백여 무역업체중 2만2천8백여개에 그쳐 나머지 6천6백여 업체가
수출업의 지속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출업을 주종으로
해오던 중소 전자업체들을 중심으로 도산, 법정관리 신청 등이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들도 자사의 유명 브랜드 상품을 수출하기 보다는 내수판매에
주력하기 시작했으며 그나마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의 임가공을 지나치게
늘려 자칫 국내 산업기반을 와해시킬 위험까지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지난 1월중 무역수지 적자가 통관기준 19억7백만
달러로 월별 적자로는 사상최대를 기록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에서 정부가 장기적으로나 추진해야 할 북방진출을 마치 경제 제1의 과제
인양 분위기를 잡고 대기업들도 이에 앞다퉈 편승함으로써 수출현안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일선 수출업자들과 경제부처 실무자들은 올해 상반기를 지난해 보다 더
심각한 수출비상 시기로 진단, 정부가 부총리 이상급으로 확실한 구심점을
정해 일관성있는 수출정책과 실효성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