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의 장기농성사태가 21일로 34일째를 맞는 가운데 농성자들이
제2차 철수시한이 지났는데도 계속 잔류할 의사를 비침에 따라 성당과 농성
자간에 알력이 표면화되고 있다.
명동성당 경갑실 수석보좌신부는 20일 하오 8시30분 유서대필혐의를
받고 있는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27)와 강씨의 후견인격인 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씨(43)를 사제관으로 불러 강씨가 당초 "광역의회의원
선거가 끝나는 20일 이후 검찰에 자진 출두하겠다"고 말한대로 조속한
시일내에 출두하도록 종용했으나 강씨측은 출두시점을 밝히지 않은채
잔류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식 9일째인 한상렬 국민회의 공동상임대표와 이수호 집행위원장 등
두사람도 병원 후송을 거부하면서 단식농성을 계속하고 있고 다른 국민회의
관계자들도 ''자진 출두 불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철수요청 묵살에 불쾌감 "대화 않겠다" ***
이에 따라 경신부는 이들이 당초 1차 철수시한으로 제시했던 15일을
넘긴데 이어 성당측이 강씨의 말에 따라 2차 시한으로 생각해 왔던 20일
후에도 명확한 철수시점을 밝히지 않은채 ''계속 투쟁''을 다짐하고 있는
점을 지적,"약속을 어기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며
심한 불쾌감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강씨측은 검찰측의 주요 증인인 홍성은씨(26.여)의 신변
상태등을 이유로 들어 "서울교구정의평화위원회측의 공정수사촉구
공한에도 불구하고 아직 검찰 측의 공정수사 태도가 미흡하다"며 유서대필
공방에서 검찰측과 대등하게 맞설수 있는 결정적인 국면이 형성될
때까지 자진출두를 미룰 뜻임을 비치고 있다.
한대표등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성당측의 어려운 입장을
이해한다"면서도 "성당측이 종교적 차원에서 보다는 현실정치적 차원에서
사안을 다루는 면이 더 크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는 한편
"성당측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투쟁이 갖는 전체 역사적 의미에 따라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같은 양측의 불화속에서 경신부는 20일 하오 10시30분께 국민회의
규찰대원들에 의해 성당밖으로 밀려나 있던 사복경찰관들에게 "허락도
없이 성당에 들어온 국민회의측에게는 공무중인 경찰을 쫓아낼 권한이
없다"며 "성당구내에서 근무해도 좋다"고 허용,평소와 달리 사복경찰관
20여명이 구내에서 철야로 국민회의 관계자들의 동태를 감시함으로써
국민회의측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 농성장인 문화관 현관의 철제셔터를
내린채 밤을 보냈다.
경신부는 또 "국민회의측이 조속한 시일안에 문화관을 비워달라고
요구한 지난달말 이후에도 계속 농성하고 있는 것은 피신이 아니라
점거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이들을 쫓아내지 못하는데 불만인
신도들의 압력이 엄청나 내 지도력에 금이 갈 정도"라고 밝혔다.
경신부의 이같은 발언은 일부 신도들 사이에 국민회의 관계자들을
물리력으로 성당밖으로 쫓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경신부 자신이 이를
통제할 힘이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성당측은 당초 한대표등 단식중인 2명의 상태가 악화돼 성당밖
병원으로 후송되고 강씨가 자진출두를 전제로 사제관안으로 피신처를 옮길
경우 경찰의 성당포위망이 완화되고 이 틈을 이용, 다른 국민회의
관계자들이 성당을 빠져나감으로써 장기농성사태가 물리적 충돌없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한대표등이 병원 후송을 거부하고
있어 조만간 실현되기는 어려울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당국은 ''공권력의 권위'' 때문에 장기농성사태를 방치할수
없는데다 광역선거도 끝난 시점에서 크게 꺼릴 것이 없다고 보고
농성사태가 더이상 장기화될 경우 농성자들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강제집행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당국은 그러나 농성자들에 대한 불쾌감과는 별개 문제로 불상사를
우려해 강제집행을 반대하는 성당측의 의사를 무시하고 경찰력을 투입할
경우 "가톨릭 자체의 종교적 권위훼손은 물론 이로 인해 가톨릭과
정부간의 관계가 악화될수 있고 ''끝까지 투쟁하면서 성역까지 침범하는
현정권의 폭압성을 폭로한다''는 농성자들의 의도에 말려들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최종결정을 미룬채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