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45년이후 지금까지 4단계의 경제계획을 실시해 왔다.
해방후의 국가건설기인 1단계(47~50년), 전후복구및 사회주의 이행기인
2단계(54~61년), 남북대결 대화기인 3단계(61~76년), 그리고 최근의
경제혼미파탄기의 4단계(78~93년)이다.
제1,2단계까지는 이럭저럭 순조로운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제1단계에는 일본통치시대에 조성된 거대한 설비 시설들이 있었으며
2단계의 출발점에서는 전쟁으로 파괴된 설비 시설의 잔해와 상당수의 기술자
사무원 노동자들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아래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방법이 나름대로의 효과를 발휘할수
있다는 것은 이미 10월혁명후의 소련의 경험에서도 명백하다.
그러나 3단계에 접어들자 경제계획이 중도에서 난항을 거듭해 왔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발표에서도 판명된다.
이것은 지난60년도부터 남북의 대결상태가 표면화되어 "국방/경제병진노선"
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있다.
이 "병진노선"은 92년의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회의에서 김일성이
내놓은 것이며 동시에 "4대군사노선"도 채택되어 실시되고 있다.
확실히 그 이후 국방비의 급격한 증가로 경제건설에 큰 부담을 안겨준것은
사실이다.
"7개년 경제계획"의 난항원인을 외부환경변화에 의한 국방비 과다부담에서만
찾는 것은 지나치게 표면적이다.
목표로 내세웠던 연평균생산율 12.8%에 비해 63년에는 8%, 숫자가 발표되지
않았던 66년과 69년의 2년에 대해서는 총괄보고에서 역산하더라도 마이너스
성장이 추정된다.
*** 생산성 저하, 목표달성 어려워 ***
이 경우 계획난항의 내적원인이 문제이다.
생각할수 있는 것은 전단계에서 달성한 100% 사회주의화가 개인경영을
완전히 소멸시켜 경제성 합리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71년부터 시작된 "6개년계획"은 공업부문의 내부고조를 완비하고 기술혁명을
성취시켜 자기자원을 개발, 이용한 자립공업을 기본목표로 했다.
그러나 이 6개년계획도 70년대에 이루어진 남북대화로 동요가 생겼으며
북은 이러한 동요를 김정일에 대한 후계세급체제를 구축한다는 새로운
기획으로 돌파하려 했으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제4단계가 되어 북한은 겨우 구실무파를 등용, "제2차7개년계획"(78~84년)을
수립, 집행토록 해 인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려 했다.
그러나 80년의 6차 당대회에서 재차주도권을 장악한 김정일이 대기념비적
건축물의 건조를 추진하는등 "속도전"형 동원을 시작해 제2차7개년계획의
추진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87년부터 시작된 "제3차7개년계획"도 김정일이 주장하는 "수도대건설"이니
"200일 전투"에 이어진 "신200일전투"등으로 계획이 교란됐고 "제13차 세계
청년학생축전"의 성대한 개최등으로 인해 이제 목표달성은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북은 이러한 실상을 위장하기 위해 "과학기술발전 3개년계획"과 "경공업
발전과 소비자물자증산계획"등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으나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아니기때문에 더욱더 경제파탄을 가속화시키고 있을뿐이다.
지금까지의 북한경제의 기본적 문제점은 당의 절대우위에 의해 경제법칙이
무시됐기때문에 발생했다.
또 지적할 것은 "속도전"형 동원방식의 모순이다.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으로 시작된 속도전방식은 품질저하와 노동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
북한은 더욱이 생산의 침체와 비정상화를 극복하기 위해 신규 대규모
설비를 갖춰 대증산을 기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기존생산시설의
가동률저하와 사회주의적 인플레이션(부족의 경제)현상을 심화시켜 경제
전체를 마비, 붕괴로 몰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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