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李대통령 '초강대국 가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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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회의로 주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초강대국 가교론’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가교론’은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인 남북이 중심이 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과 달리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가교 역할을 맡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美·中 간 충돌 완화 역할 관건"
李·시진핑 별도 정상회담 추진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결정한 직후 입장문을 내고 “우리 정부는 그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지는 회원국 간의 다각적 외교적 소통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미·중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환영할 일이기에 최대한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21일 “미·중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이 대통령의 가교론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실용외교뿐만 아니라 가교외교론을 강조하는 것은 최근 국제 정세를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한·미·일 등 자유 진영에 맞서는 북·중·러의 밀착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우방국들을 상대로 각종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자칫하면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 낀 상황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에서 ‘교류와 협력의 가교’ 역할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미국 중심 공급망 속에서 미국과 함께하겠지만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중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두 진영 간 대립의 최전선에 서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외교가에서는 이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때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면 국제사회의 ‘가교’로서 자리매김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이 대통령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우려도 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및 시 주석의 양자 회담 결과도 관건이다. APEC 정상회의 폐막 직후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이 서울로 자리를 옮겨 별도의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