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런던 공습에 '엄마 찾아 삼만리'…존엄하게 살아남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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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아웃 오브 넷플릭스영어로 블리츠(Blitz)는 전격전, 맹공격, 집중 폭격을 뜻한다. 독일어로 블리츠크릭(Blitzkrieg)이며 나치 히틀러의 런던 대공습 작전을 가리켰던 말이다. 런던 대공습은 일반명사가 됐다. 이 공습은 1940년 9월 7일에 시작돼 57일간 이어졌으며 매일 1천 대의 독일 폭격기가 런던 상공에 나타나 폭격을 이어갔던 역사를 말한다. 민간인 4만 명 이상이 죽었고, 15만 명 가까운 시민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런던은 초토화됐다. 매일 10만 명 가까운 시민들이 방공호와 가까운 지하철 정거장에 피신해야 했다.
스티브 맥퀸 감독
애플 TV+ ‘런던 공습(Blitz)’
영국의 흑인 감독 스티브 맥퀸이 만든 영화 ‘런던 공습(Blitz)’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스티브 맥퀸을 가리켜 왜 굳이 흑인 감독이라며 인종을 밝히는 이유는 그가 이번 전쟁영화를 통해서도 흑인의 정체성을 비롯해, 인종 문제와 계급 문제를 내용 안으로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재앙에 가까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인간을 결집하는 것은 놀랍게도 (인종 문제 같은) 작다면 작은 차이들을 딛고 일어서는 것,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게 하고 연대하게 하며 더 크고 더 가공한 적에 맞서 싸울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1940년을 전후한 시기임에도 놀랍게도 주인공 리타 핸웨이(시얼샤 로넌)는 흑인인 마커스와 연인 관계였고(아마도 둘은 재즈 바의 연주자와 가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백인 인종주의자들과의 시비 끝에 경찰에게 끌려가 추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리타는 홀로 혼혈아인 조지를 키우며 살아 가는데 피아노 연주자인 아버지 제랄드(폴 웰러)가 이 모자를 돕는다.
“우리가 도우려는 당신들이 누구이든, 어디에서 왔든 상관이 없습니다. 저도 이스트엔드에서 유대인으로 자랐습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서로를 도왔습니다. 우리는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뭉친 선량한 노동계급의 남자와 여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자라도 합니다. 네 압니다. 우리 사회의 위험한 적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의 이상은 공산주의보다 기독교와 좀 더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어쩌면 말이죠. 예수는 빨갱이였을지도 모릅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박수를 친다. 주인공 리타는 미키와 마주 앉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해 달라고 한다. 그녀는 자원봉사에 나선다.
엄마를 찾아 기찻길과 이곳저곳의 도시(런던 인근 지역)를 헤매던 조지도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는 우연히 이페라는 이름의 흑인 경찰(벤자민 클레멘타인)을 만난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출신이며 이페는 영어로 사랑이란 뜻이다. 이페는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수용시설 안의 사람들을 당당히 훈계한다. “이곳에 인종차별은 없습니다. 차이와 차별이야말로 바로 히틀러가 원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 감독의 정신적 자서전 같은 작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잉글랜드 런던 출생으로 첼시 예술대와 골드 스미스 아트 스쿨 같은 명문대를 나왔지만, 그는 정통 앵글로 색슨의 사회인 영국에서 늘 차별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맥퀸 같은 영국인 흑인은 모국을 영국(영화에서처럼 백인의 엄마)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은 검은 아프리카 흑인(혼혈아인 조지)이라는 이중적 자의식으로 분열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남다른 정체성을 1940년의 런던 대공습의 상황 속에서 헤어진 두 모자의 이야기로 꾸며 낸 셈이다. 결과적으로 흑인 아이를 둔 백인 엄마의 그 차별 없는, 더 나아가 사회적 차별의 시선이 두렵지 않은 모성이야말로 결국 세상을 구원해 낸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셈이다. 그 기이한 층위, 합쳐지지 않을 것 같지만 결국은 합체를 이루는 관계의 얘기가 좋다.
엄마 리타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 BBC가 공개방송 무대를 만들자, 여자 노동자 대표로 나가서 주옥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리타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기회는 이때다 싶은 여성 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라가 정부에 대해 요구사항을 구호로 외친다. 그렇게 노동의 일상조차 폭격 속에서도 이어진다. 아이 조지가 지하철 레일 통로에서 잠을 자려 할 때 한쪽 구석의 남녀는 섹스를 한다. 폭격 속에서도 사람들의 생활, 사랑, 그리고 심지어 섹스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일종의 생명의 복원력 같은 것이며 나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적 욕망의 복원력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