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연금술사…서울 알짜부지 '성형수술'하는 디벨로퍼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는 연중 사람들로 북적이는 복합상업단지다. 매년 방문객 수가 4000만 명을 웃돈다. 인근엔 유명 기업이 밀집한 고층 빌딩, 명품 쇼핑거리, 식당가, 미술관, 주거단지 등이 모여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이 낙후된 구도심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이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한 곳은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 모리빌딩이었다. 일본에선 미쓰이부동산, 미쓰비시지쇼, 스미토모부동산 등 내로라하는 디벨로퍼들이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도라노몬, 미드타운, 긴자6, 시오도메, 마루노우치지구 등은 지역 명소로 부상하면서 주변 지역 재생에 촉매 역할을 했다. 앞으로 서울에서도 디벨로퍼가 선보이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이 속속 나올 전망이다. 신도시·택지지구 아파트 개발사업에서 자금을 축적한 디벨로퍼들이 서울의 초대형 도시재생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어서다.
땅의 연금술사…서울 알짜부지 '성형수술'하는 디벨로퍼
◆잇따라 주인 찾는 대형 개발지

최근 디벨로퍼가 사들인 부지들은 입지 여건이 뛰어나지만 건물 쓰임이 다해 발전이 정체된 곳에 있는 게 공통점이다. 국내 최대 디벨로퍼인 엠디엠(MDM)은 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동아자동차운전전문학원 부지를 약 3200억원에 사들였다. 면적이 3만8186㎡로, 서울 시내에선 몇 개 남지 않은 대규모 개발지다. 엠디엠은 이 땅을 700여 가구 규모의 고급 아파트단지로 꾸밀 계획이다.

지난달 27일에는 일레븐건설이 서울 용산 유엔사 부지 5만1762㎡를 1조552억원에 낙찰받았다. 전용면적이 85㎡보다 큰 아파트 780여 가구를 지어 최고급 주거타운을 건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지 면적 30% 이상에는 오피스와 상업·문화시설 등도 넣는다.

올해 부동산개발시장의 최대어 중 하나로 꼽힌 서울 여의도 옛 MBC 사옥 부지는 지난 3일 1세대 디벨로퍼인 신영과 NH투자증권, GS건설 컨소시엄의 몫이 됐다. 1만7795㎡ 규모인 이 땅의 매각가와 사업비는 각각 6000억원, 1조2000억원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영은 이 부지에 오피스·주거 복합건물을 짓는다.

피데스개발은 3일 서울 방학동의 KT지사 부지(3300㎡)를 매입했다. 앞으로 주거·상업시설로 개발할 예정이다. 경기도의 1기신도시 역세권에서 초대형 상업시설 부지도 매입했다.

시티코어는 서울 종로구 공평1·2·4지구 재개발을 하고 있다. 연면적 14만1474㎡ 규모의 업무용 빌딩을 건립 중이다. 이 회사의 이진호 대표는 2007년 서울 청계천변 랜드마크로 부상한 오피스빌딩 ‘센터원’ 개발에도 참여했다.

◆지역 맞춤형 도시재생 주도

이처럼 디벨로퍼가 구도심이나 나대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서는 것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14년부터 올해 말까지 택지 공급을 중단함에 따라 수도권 지역 가용 택지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디벨로퍼들은 주택 공급 일변도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도시재생 사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다.

디벨로퍼들은 초대형 도시재생 사업을 벌일 만한 자금력도 갖췄다. 최근 몇 년간 디벨로퍼는 신도시와 택지지구 아파트 개발사업에서 수천억원대 현금을 확보했다. 게다가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도시재생을 도시 정책의 대표 기조로 들고나왔다. 디벨로퍼가 도시재생 사업의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 프로젝트 발굴부터 기획, 자금 투자, 시공, 마케팅, 운영 등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도 “디벨로퍼는 땅에서 남들이 보지 못한 사업성을 찾아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게 일”이라며 “창의적인 지역 맞춤형 개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디벨로퍼들이 도시재생에서도 분양에 치중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디벨로퍼들은 개발한 프로젝트를 팔지 않고 보유·운영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