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수출이 9개월째 감소하고 있는 데다 투자 생산 소비 등 각종 경제지표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격화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수출 규제,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 여건도 악화일로다. 급기야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과 물가 하락(디플레이션)이 고착화하는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디플레이션은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 침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경제에 치명적이다. 정부는 “유가와 농축산물 가격 하락 등 공급 요인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 등의 영향을 배제한 근원물가도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면 사상 최저 수준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기하강 속도가 빨라진 것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은 2분기 경제성장률(잠정치)을 1.0%로 7월 속보치보다 0.1%포인트 하향했다. 올해 2%대 성장을 달성하려면 남은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0.6~0.7%가량 성장해야 하는데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저물가-저성장’ 기조 속 원화가치 하락은 당장 올해 1인당 국민소득(GNI·달러 환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1인당 국민소득의 3대 변수(실질성장률·물가·원화가치)가 지난해보다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3만3434달러에서 올해 3만1500달러대로 급감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2017년(정부 국민계정통계 기준연도 변경 반영)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 클럽(1인당 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넘는 나라)’에 가입한 지 3년 만인 내년에는 3만달러대 유지를 장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규제완화, 구조개혁 등으로 4만달러 돌파에 성공했다. 스페인 그리스 키프로스 등 남유럽 3개국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다 2만달러대로 밀린 뒤 3만달러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다. 일본은 1995년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넘어섰지만 거품 붕괴 등으로 다음해 3만달러대로 뒷걸음질했다. 20여 년 동안 3만달러대를 맴돌다 지난해(4만1340달러·국제통화기금 집계) 겨우 4만달러대를 회복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편 ‘아베노믹스’ 덕분이다.

경제 체질을 개선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대로 진입하느냐, 아니면 동력을 잃고 2만달러대로 추락하느냐는 앞으로 몇 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 4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한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깨고, 신산업 진입과 혁신을 방해하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이런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대로 간다면 3만달러 수성은 힘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