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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10-30 11:06:35 / 수정: 2006-10-30 11:06:35
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14)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2003년 6월20일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49)은 어둠이 깔린 서울 테헤란로를 걷고 있었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한 줄기 소나기가 세차게 뿌리고 지나간 뒤였다.

강남 거리는 이제 막 불을 밝히고 있었다.

후두둑 후두둑…. 가끔 비 긋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산도 쓰지 않았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기분 좋은 밤이 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여정을 돌아보며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과연 꿈을 이뤘나.

여기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하던 곳이었던가?"

김 사장은 그날 오전 7월1일자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BMW의 본사 임원(Senior Executive)으로 선임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바이에른의 자동차공장(Bayerische Motoren AG)"이라는 뜻을 가진 BMW는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브랜드.그 BMW가 서울대도 도쿄대도 아닌 상업고등학교 출신을 본사 임원으로 등재한 것.더구나 BMW는 해외 근무 경험이 전혀 없는 그의 경력을 감안해 "두 지역(국가) 이상에서 확실한 성과를 거두어야만 된다"는 내부 규정까지 고쳐가며 그를 임원으로 발탁했다.

김 사장은 덕수상고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

그나마 방통대는 고교 줄업(1975년) 후 22년 만에 마친 것이었다.

"아니,상고 출신이라고 차별하는 것입니까?"

김 사장은 성동중학교를 다녔다.

학급 반장을 도맡을 정도로 성실하고 총명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부친이 교통사고를 당해 생활능력을 상실하는 바람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3남2녀 중 장남인 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중학생을 지도하며 동생들 뒷바라지와 집안살림을 도왔다.

고3 때인 1974년 여름 삼보증권(현 대우증권)에 취직이 돼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재무와 경리를 담당했다.

그는 매사에 당당했다.

사무실에 사장이 나타나면 모든 직원이 일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총무부장을 찾아가 개선책을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건방지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지만 이 일은 직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비슷한 일화는 또 있다.

1976년엔 친하게 지내던 선린상고 출신의 선배 한 사람이 승진인사에서 누락되는 일이 벌어졌다.

평소 근무태도나 전문지식,인간관계로 봤을 때 반드시 승진해야 할 사람이었다.

김 사장은 한밤중 인사담당 임원의 집을 찾아갔다.

"우리 회사에는 능력이 출중한 상고 출신이 많습니다.

그런데 단지 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졸 출신들과 차별한다면 누가 이 회사에 충성을 바치겠습니까?"

1979년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하트포드라는 외국계 화재보험사로 옮겼다.

삼보증권 시절 학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는 전혀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았는 데 다른 이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외국계 회사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생각에 전직을 했습니다."

"제가 인센티브를 포기하겠습니다"

하트포드에서 6년6개월 동안 재무 담당으로 일하면서 다른 욕심이 생겼다.

제조부문에 대한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다.

마침 1986년 제약회사로 명성이 자자하던 미국 신텍스가 한국법인 설립을 위한 창설요원을 모집했다.

창립 멤버(재경부 차장)로 입사해 초기 회사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약회사 영업에는 엄청난 활동비가 들어간다.

신약이 출시되면 의사와 약사들에게 임상실험을 부탁하고 그 대가로 음성적인 돈을 건네는 것이 당시 관행이었다.

그는 해당 분야의 세법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끝에 '임상실험비'라는 항목을 찾아냈다.

회사는 연간 수십억원의 경비를 손비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충북 음성에 제약공장을 지을 때는 갖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을 만나 끈질기게 설득해 인가를 얻어냈다.

재무 전문가가 그런 역할을 해내자 신텍스 본사에는 "굉장히 이상한 파이낸스 디렉터가 한국에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13명으로 시작한 한국신텍스는 직원이 135명으로 늘어났고 매출액도 일취월장했다.

김 사장은 부장,이사로 승진을 거듭한 끝에 1994년엔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았던 그 시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신텍스 본사가 스위스 로슈에 매각된 것.한국신텍스는 로슈가 한국에 투자한 한국로슈와 합병해야 했고 김 사장과 100여명의 직원은 회사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됐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왜 학위가 필요합니까"

BMW와 인연을 맺은 것은 헤드헌터 덕분이다.

신텍스 직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고용한 헤드헌터가 정작 김 사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김 사장은 직원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많은 퇴직금을 주기 위해 자신 앞으로 배정돼 있던 수억원의 퇴직 인센티브를 포기한 일로 업계 평판도 무척 좋았다.

1995년 3월 미국 유명대학 박사와 MBA(경영학 석사) 출신의 예비후보 2명과 함께 독일에서 면접을 보았다.

그는 '한국의 수입차 시장 현황'이라는 두툼한 보고서를 준비해갔다.

자신의 부족한 학력을 메우기 위해 현재 방송통신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석사 학위도 딸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중에 합격통보를 받고 나서 당시 비간트 BMW코리아 사장으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당신을 뽑기 위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꾸 공부를 더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금융·제조회사 근무 경험에다 신텍스 시절의 훌륭한 업적까지 갖고 있는 당신에게 무슨 공부가 더 필요합니까."

김 사장은 멀고 외진 길을 돌아왔다.

출발은 볼품 없었지만 전인미답의 길로 새로운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분명 지름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늦은 것도 아니었다.

이제 겨우 49세다.

"아직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그는 과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지만 한번도 가난을 탓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부자들을 존경하고 배우려 노력했습니다.

당장 현실이 힘들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만 옵니다."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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