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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10-20 15:52:00 / 수정: 2005-10-20 15:52:00
건강한 인생

영재로 키우고픈 부모 욕심..사회 부적응 아이 만들수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김모 어린이(5세)는 3세때부터 비디오 테이프로 한글과 영어도 배우고 수학과 과학에 대한 간단한 내용도 익혔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지금은 글자는 쉽게 읽는데 비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래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지고 언어 구사능력도 별반 나을 게 없는 실정이다.

영유아 때 학습지나 비디오를 통해 과도한 문자 및 숫자 자극에 노출되면 성장하면서 타인과의 친밀감을 갖지 못하고 매사에 무신경해지며 판에 박힌 행동을 한다는 소아정신의학적 이론이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다.

미국 소아과학회는 2세 미만의 어린이는 TV를 봐선 안된다고 권고하고 있기까지 하다.

삼성서울병원 학습장애클리닉에는 유치원 때부터 부모의 등쌀에 시달려 학습 과잉상태로 인해 우울증이나 불안감 강박 증상을 호소하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환자들이 적지않게 찾아온다. 이런 어린이들은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기도 하고 이유없이 눈을 깜박거리며 킁킁거리거나 어깨를 으쓱거리는 '틱(Tic)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어릴 때 공부를 많이 했던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도 종종 찾아온다.

정작 독립적으로 공부할 시기에 학업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를 최고로 키우겠다는 부모들의 욕심이 이 같은 '과잉학습 증후군'을 낳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조기교육''영재교육'붐은 저출산시대를 맞아 더욱 극성을 띠면서 아이들을 한시도 쉴틈없이 과외 학원과 예체능교습소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간 두뇌는 연령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역량에 맞게 '적기교육'을 시켜야 학습량이 지나쳐 일어나는 소화 불량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뇌는 대뇌피질을 기준으로 전두엽(이마 위쪽)→측두엽(머리 측면)·두정엽(정수리)→후두엽(뒤통수) 순으로 발달한다.

생후 만 3∼6세까지는 뇌의 기본 구조와 회로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이때 전반적인 사고능력과 인간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신경이 최고도로 발달한다.

따라서 3세 이전까지는 오감을 통한 고른 자극이 필수적이다.

특히 책이나 비디오를 이용한 교육법은 시각 청각 등 편중된 자극만을 집중적으로 아이들의 뇌에 전달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대부분 교육 전문가들의 얘기이다.

언어·청각기능을 관장하는 측두엽은 만 6세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해 12세까지 크게 신장한다.

따라서 만 2∼3세의 한글 교육은 효율이 떨어지며 초등학교 입학 후 언어학습에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면 6세 이후에는 조금만 자극을 줘도 쉽게 이해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이때가 가장 적당한 시기라는 주장이 많다.

영어 조기교육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 어린이처럼 두 가지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여러 언어를 습득할 수 있으나 국내 어린이처럼 학원이나 비디오로 잠깐 영어를 배우는 경우에는 능률이 떨어지며 외국어는 물론 모국어의 발달도 지연될 수 있다.

따라서 영어교육은 초등학교 이후부터 15세 이전에 마쳐야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다.

요즘 웬만한 어린이라면 하나씩 배우는 예체능 교습도 지능발달에 도움이 된다.

이스라엘의 영재교육에서 보듯 어린 시절 예술교육은 성인이 돼서 여러 영역의 능력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모차르트 등 고전음악을 들으면 수학 및 공학분야에서 좋은 업적을 남길 수 있다는 '모차르트 이펙트'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문제는 이런 두뇌발달을 위한 교습에만 치중하다 보면 아이들이 한시도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은 그동안의 배운 것을 저장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좋은 기회인데 부모가 아이를 그냥 놔두지 않는 것이 요즘 교육 패턴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컴퓨터는 그나마 있는 어린이의 여가시간마저 빼앗아 이 문제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력저하,비만,사회성 결여,사이버 중독증 등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서유헌 서울대 의대 생리학 교수,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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