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 60대 남성이 귀갓길에 전동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던 청년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당시 이 남성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등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영상 =  유튜브 채널 '실화ON'
지난 8월 한 60대 남성이 귀갓길에 전동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던 청년에 치여 중상을 입었다. 당시 이 남성은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등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영상 = 유튜브 채널 '실화ON'
전동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던 청년에 치여 119 구급대에 의해 응급실로 이송,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로 현재 병원 중환자실에서 3일째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60대 아버지가 전동킥보드에 치여 사경을 헤맨다고 밝힌 청원인은 "행복한 우리 가정이 파탄이 났다. 전동킥보드로 인해 더 이상 상처받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동킥보드 사고, 최근 3년간 18배 급증했는데…규제는 '완화'

이처럼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국회는 도리어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24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49건에 그쳤던 전동킥보드 이용자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급증해 지난해는 890건을 기록했다. 3년 만에 18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올해는 더하다. 상반기(1월~6월)에만 886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면허 소지 여부에 대한 실질적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면허 중학생도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는 방향이 논의되면서 '도로 위 무법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진다.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국회의 '탁상공론' 입법과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했다.
23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 공유킥보드들이 도보 한 가운데 놓여있다.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23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 공유킥보드들이 도보 한 가운데 놓여있다.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오는 12월10일부터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은 전동킥보드를 '개인형 이동장치'(전기자전거·자전거)로 규정, 사실상 자전거와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했다. 최고 속도 시속 25㎞ 미만, 총중량 30㎏ 미만인 전동킥보드가 해당된다.

전동킥보드는 그간 이륜자동차와 같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돼 차도 통행, 이륜자동차용 안전모 착용 등 이륜자동차와 동일한 규제가 적용됐다.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킥보드 이용이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 이 면허는 만16세 이상부터 딸 수 있다.

전동킥보드, '무면허' 만13세 이상부터 탈 수 있어…불안 가중

전동킥보드에 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왔다. 이륜자동차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져 사고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입법 방향은 전동킥보드를 전기자전거 수준으로 취급하겠다는 쪽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전동킥보드가 전기자전거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로 분류되면서 이용자 기준이 만 13세 이상으로 낮아졌다는 점. 이용 연령과 면허 소지 여부에 대한 실질적 단속이 어렵다는 점도 연령을 낮춘 이유로 꼽았다.

게다가 면허를 취득할 필요도 없어졌고, 헬멧 등 안전장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미 많은 학생들(만 16세 미만)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고 있지만 단속이 안 되는 부분이 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현행법을 유지시키는 것은 범법자를 양산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법을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전거도로 70%가량이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왼쪽 사진처럼 자전거도로와 도보 구분없이 보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국내 자전거도로 70%가량이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왼쪽 사진처럼 자전거도로와 도보 구분없이 보행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진 =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이로 인해 더 큰 사고가 우려된다는 게 전문가를 비롯한 상당수 시민들 반응이다. 킥보드를 타는 데 큰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도로 교통 관련 기본지식이 부족한 무면허 청소년들이 킥보드를 주행할 경우 사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법적으로 차도로 다녀야 했던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안전해진 반면, 국내 자전거도로 70%가량이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인 만큼 보행자 사고 위험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오토바이 속도로 달려오는 전동킥보드가 인도에서 옆을 지나치는데 식겁했다" "규제 완화 솔직히 이해 안 간다. 지금 방치하는데 결국 일 터져야 수습할지" "규제를 강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오토바이보다 훨씬 겁난다" 등 각종 불만이 잇따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개정안 시행을 막아달라는 청원글이 여럿 올라와 있다.

전문가 "무책임한 입법…문제해결커녕 부작용만 양산할 것"

전문가들도 이번 개정안은 무책임한 입법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갖은 부작용을 양산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런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오히려 시장을 혼란시킬 가능성만 부추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특히 만 13세 이상 허용에 대해서는 "면허는 필요 없더라도 교육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전동킥보드 타는 법 같은 기능 측면 교육을 넘어 도로 주행시 유의사항 등의 기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필수 교수는 "안전장비 착용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빠져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동킥보드가 보도 위로 올라오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했으면, 자전거나 사람과의 사고 가능성과 같은 부작용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입법이 없다"면서 "이런 주먹구구식 입법은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할 뿐이다. 땜질 처방이 아닌 '개인형 이동장치 총괄관리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호근 교수도 "실질적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로 법을 완화하는 것은 무책임한 조치다. 이런 식으로 개정안을 낼 거면 처음부터 연령이나 면허 관련된 규제를 했으면 안 됐다"며 "탁상공론 발상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꼬집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