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헤지펀드 1위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으로 돈이 묶인 피해자 10명 중 6명은 은행 창구를 통해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마찬가지로 은행의 과도한 수익 추구와 부실한 내부 통제가 투자자 피해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독] 라임 환매 중단 피해자 62%가 은행서 가입
투자자 62% 은행에서 가입

22일 금융감독원이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환매가 연기됐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는 라임운용 펀드에 돈을 넣은 개인투자자 3606명(계좌 수 기준) 중 은행에서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는 모두 2237명(62%)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1369명은 증권사를 통해 가입했다. 판매 은행은 7곳, 증권사는 11곳이었다.

우리은행을 통한 펀드 가입자가 144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나은행(385명), 대신증권(362명), 신한금융투자(301명), 신영증권(229명), 부산은행(216명), 메리츠종금증권(160명), KB증권(104명), 경남은행(97명) 순이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도 27명으로 확인됐다.

가입 금액은 우리은행(3259억원), 신한금투(1249억원), 하나은행(959억원), 대신증권(692억원), 메리츠증권(669억원), 신영증권(646억원), 부산은행(427억원) 순으로 컸다. 고객 1인당 평균 가입 금액은 NH투자증권이 4억3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메리츠증권(4억2000만원), 신한금투(4억1000만원), 삼성증권(3억5000만원) 등 순이었다. 1인당 평균 가입 금액은 증권사가 3억1000만원으로 은행(2억2000만원)보다 많았다.

금융당국은 앞서 대규모 손실이 확정된 해외 금리연계 DLF와 마찬가지로 은행권 고객 비중이 높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경우 지점 직원 평가 잣대인 핵심성과지표(KPI)에서 펀드 판매 등 비이자이익 반영 비율이 높다”며 “실적 압박에 수익률이 우수하다는 라임운용 펀드를 유동성 리스크 요인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여 저축은행도 조사

은행 등에서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로 라임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환매 중단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라임운용 무역금융 펀드에 수억원을 넣은 한 피해자는 “은행에서 준 펀드 투자설명서에는 분명 6개월 이하로 만기가 짧은 대출채권에 투자한다고 돼 있었는데 알고 보니 5년 이상 장기물에 투자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사업자금에 써야 하는데 5년 뒤에나 환매가 가능하다고 하니 피가 마르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에는 라임운용과 관련해 현재까지 10여 건의 분쟁조정 신청 등 민원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 환매 중단 통보를 받은 피해자들은 법무법인과 함께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등 법적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저축은행도 다수가 관련 펀드에 가입하거나 대출을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은 전체 저축은행 79곳을 대상으로 라임운용에 대한 대출과 펀드 투자 현황을 취합하는 등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라임운용은 고위험 메자닌(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주식과 채권 중간 성격의 상품)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편법 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투자자 이탈이 나타났다. 자금 유출 속도에 맞춰 투자자산을 처분하기 어려워지자 결국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운용과 관련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