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트루먼쇼를 보면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국내 개봉한 영화 ‘트루먼쇼’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시헤이븐(Seahaven)이란 섬에 사는 트루먼 버뱅키는 평범한 보험사 직원이다. 그러나 그는 태어날 때부터 드라마 주인공이 돼 30년의 인생을 세트장 안에서 보낸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 물에 빠져 돌아가신 아버지, 대학 동창인 아내까지 모두가 설정이지만 주인공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가 움직이는 곳곳엔 카메라가 숨어 있고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실시간으로 생중계된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트루먼 신드롬’ 환자들을 양산해내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폐쇄회로TV(CCTV)와 휴대폰만 분석하면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재생할 수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의 CCTV가 2016년 800만 대를 넘어섰으며 내년에는 1000만 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9초에 한 번 CCTV에 포착된다고 하니 거의 모든 일상이 촬영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차량 블랙박스까지 포함하면 가늠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휴대폰 보급률도 95%를 넘어섰다. 통화와 문자뿐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사회생활과 폰뱅킹 등 경제금융 생활을 휴대폰이 모두 기록하고 있다.

공리주의로 잘 알려진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18세기 말 감옥의 수형자들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판옵티콘(Panopticon)의 감시체계를 제안했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판옵티콘을 통해 ‘내게는 상대가 안 보이지만 상대에게는 내가 보인다는 인식’이 권력의 무서움이라고 했다. 현대사회가 디지털 기술을 통한 감시체계를 활용해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한 감옥이 될 것이라던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일상에 의구심을 품고 조작된 세계에 갇힌 자신을 발견한 버뱅키는 마침내 가짜 삶의 껍질을 깨고 진짜 세상을 향해 탈출한다. 제작자의 온갖 방해와 협박에도 자유를 찾아 떠나는 트루먼은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And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언제 만날지 모르니 하루치 인사를 미리 해두죠. 좋은 오후, 저녁, 밤 되세요)”라고.

영화 ‘트루먼쇼’의 엔딩에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웃어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화된 감시에 푹 젖어 있는 현실에서도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일상의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이 가능할지,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 반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