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현물 납부 방식의 금강산관광 재개를 북측에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미 워킹그룹(실무협의체)을 통해 미국과의 조율도 마쳤다. 금강산관광 재개가 오는 27~28일 열릴 예정인 2차 미·북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2일부터 이틀간 금강산을 다녀온 남북교류단체 관계자는 18일 “현금 유입 없는 금강산관광 재개를 정부가 북한에 제안했고, 북측도 이에 동의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금강산 및 개성공단과 관련해 “조건 없는 재개”를 강조한 바 있다.

[단독] 정부, 北에 '현물지급' 금강산관광 제안
정부의 이 같은 제안은 미국과의 협의하에 진행됐다. 남북관계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6일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평양 방문 전 대북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남북 경협을 재개할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관광은 현대아산이 북한에 필요한 물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개성공단에 대해선 에스크로 계좌(제3자 예치)를 활용하는 방안, 북한근로자협의회(가칭)에 대금을 지급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비핵화의 문’에 들어서게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어떤 식으로든 남북 경협 재개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이날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보상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개성공단은 미국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해 당장은 어렵다”며 “관광 자체는 제재 대상이 아니므로 금강산관광이 먼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재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대북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경협을 재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남·북·미 3자가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이를 베트남 하노이(27~28일)에서 열리는 미·북 2차 정상회담에서 어떻게 소화하느냐다. 북한은 영변핵시설 폐기 등 핵 동결에 대한 당장의 상응조치로 경협 재개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정부, 北에 '현물지급' 금강산관광 제안
아이디어가 현실로

남북경협의 ‘우회로’가 처음 언급된 건 지난달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서였다. 더불어민주당 초청 강연에서 강 장관은 “대량 현금(bulk cash)이 유입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차원의 물품을 대금으로 지급하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와 미국 독자제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대량 현금 유입뿐만 아니라 합작회사 금지, 전자제품 등 특정 물품 수출입 금지, 금융 관계 차단 등 촘촘한 제재망을 펼치고 있다. 강 장관의 발언은 제재 틀을 유지하면서도 남북경협을 재개할 방안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파장을 의식한 듯 닷새 뒤인 16일 강 장관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지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1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방미 직전 돌연 말을 바꾼 것이다. 미·북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는 등 작년 11월 중단됐던 미·북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남북경협이란 미묘한 의제를 일단 넣어두자는 차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17일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 신청을 보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건-김혁철 라인’ 남북경협 논의했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던 남북경협 재개 방안이 다시 떠오른 건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달 5일 방한했을 때다. 평양행을 앞두고 있던 비건 대표에게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에 대해 그간의 ‘연구 결과’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는 평양에 가기 약 보름 전인 지난달 19~21일 스톡홀름에서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첫 실무협상을 했다. 당시 협상에 대해 비건 대표는 “모든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꺼내 놓고 대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평양 협상에서 북측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와 관련해 비건 대표가 나름의 ‘카드’를 준비하려는 차원에서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들었다는 얘기다.

남북경협 ‘우회로’는 작년 말부터 한·미 워킹그룹 차원에서 논의돼온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워킹그룹 내 미국 측이 선임한 미국법 전문가가 있다”며 “국제 사회와 미국의 제재 질서 내에서 남북 관계를 진전시킬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초 김영철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뉴욕회담’이 무산된 이후 미·북 협상 교착을 뚫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준비해왔다. ‘남북관계 과속론’을 잠재우기 위해 경협 논의를 작년 11월20일 출범한 한·미 워킹그룹 내로 들여온 게 대표적인 사례다. 올 1월의 스톡홀름 실무협상도 한국 정부의 보이지 않는 중재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판 실무협상에서 판가름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경협이 재개될 수 있다는 데 남·북·미 3자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당장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오는 20일께 시작될 ‘비건-김혁철’ 간 막판 의제협상에서 담판이 이뤄질 전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물 납부 방식을 통한 금강산 관광이 제재 대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이 하노이 회담에서 이를 상응조치로 내놓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제재를 일단 완화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제재의 둑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하노이 선언’에 남북경협 부분 재개가 유화책으로 담길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8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 특보는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보상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보상책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만으로는 북한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제재의 예외로 인정하지 않으면 북한이 비핵화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