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미국과 중국의 '가짜 휴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관세 인상을 90일간 유예하고 협상 창구를 마련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접근 방식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중 정상회담 뒤인 지난 4일 다우지수는 800포인트 하락했다.

무역 긴장을 완화하려는 두 정상의 접근법과 비슷한 선례는 많다. 1930년 2월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보호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보호주의는 대량생산 방식의 발전을 저해하고 유럽 회복을 지연시키는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30개국이 제네바로 대표단을 파견했다.

국제연맹 경제위원회는 협상을 앞두고 2년간의 ‘관세 휴전 협약’ 초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표단은 이 초안도, 프랑스가 제출한 후속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생 국가들은 야심찬 산업화 계획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만성적자를 내고 있던 국가들은 더 많이 수입하겠다는 다른 국가들의 약속이 빠진 협약엔 서명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런 합의도 이뤄지지 않았고 4개월 뒤 미국은 정치적 압력에 밀려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유럽 각국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광범위한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 제정 계획은 대공황 이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대공황이 시작된 뒤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 가장 실현 가능한 무언가는 바로 관세였다.

오늘날 주택시장 냉각과 금융 여건 악화로 인해 미국의 경기 후퇴는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주식시장 하락을 동반한 경기 침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그 무언가로 인해 중국이 희생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

1930년 당시에도 ‘무엇에 서명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에 참석한 국가들의 견해는 매우 달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미국의 적자가 빠르게 줄어들 것을 기대하는 반면 중국 관영 언론은 점진적인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문은 지식재산권(IP)이다. 미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이 강제적인 기술 이전과 IP 보호에 대해 즉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무역 문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IP제도 개혁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다. 하지만 IP 보호를 위해선 중국 경제 모델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90일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다.

그렇다면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한 가지 시나리오는 중국이 미국산 콩을 추가로 구매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을 위대한 승리로 묘사하는 것이다. 실질적 변화는 없겠지만 적어도 외교적·상업적으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을 멈출 것이고 파괴적 불확실성도 사라질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도 이런 식으로 마무리됐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6월 미·북 정상회담과 비슷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만이라도 나서서 중국 경제의 엄청난 변화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돌파구에 대한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어떤 실질적인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현실에 눈을 뜨면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무역전쟁은 재개될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높을까. 1930년과 마찬가지로 그 답은 미국 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달려 있다. NAFTA 재협상이 진행되던 때처럼 경기 확장 국면이 지속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허울뿐인 양보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는 신호가 나타나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비난할 대상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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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