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중징계 조치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한국거래소의 상장유지 결정으로 기사회생했다. 주식거래도 19거래일 만에 재개된다. 회계 투명성 측면에서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안정적인 재무 상태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성을 보였다는 점이 상장유지 결정의 주된 근거로 꼽혔다.
거래소 "삼바 영업 지속성·투자자 보호 등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11일 오전 9시부터 거래 재개

한국거래소는 10일 기업심사위원회를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유지를 결정했다. 상장유지 결정에 따라 다음날인 11일 오전 9시부터 주권 매매거래가 재개된다.

앞서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관련 회계처리를 변경한 사안을 ‘고의적 분식’으로 판단하고 과징금 80억원 부과와 검찰 고발 등 중징계 조치를 내렸다.

같은 날 거래소는 증선위 조치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는 점을 확인하고 매매거래 정지 결정을 내렸다. 이어 같은 달 30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폐지 여부를 기업심사위에 상정했다.

기업심사위 심의는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거래소는 지난달 말 기업심사위 상정 직후 관련 전공 대학교수,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가 6명과 당연직인 거래소 임원 1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렸다.

기업심사위는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라 기업의 계속성, 경영의 투명성, 공익 실현과 투자자 보호 등 관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했다. 거래소는 “경영의 투명성과 관련해 일부 미흡한 점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계속성과 재무 안정성 등을 고려해 상장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기업심사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실적이 매년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매출 4646억원을 올렸고, 영업이익은 660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매출 7250억원에 영업이익 1468억원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래소는 “매출과 수익성 개선이 확인된 가운데 사업전망과 수주잔액·수주계획 등을 고려할 때 기업의 계속성에 심각한 우려가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증선위가 문제삼은 재무상태 역시 상장유지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 2016년 11월 시행한 공모증자와 지난달 바이오젠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행사 등으로 상당 기간 내 채무불이행 등이 현실화될 우려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거래소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분식회계 혐의로 중징계 조치를 받은 이상 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일부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회사 측으로부터 감사기능 및 내부회계관리제도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개선계획을 제출받았다. 거래소는 개선계획 이행 여부를 향후 3년간 점검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말 바꿔 불신 초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관련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손상된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초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회계논란이 내내 이어지면서 8만 명에 달하는 소액주주는 속이 타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지난 5월에는 금융감독원의 사전조치안이 공개되면서 사흘 새 주가가 26% 넘게 급락해 시가총액이 8조원가량 증발하기도 했다.

그 사이 한국 자본시장과 회계제도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증시 상장을 추진했다. 당시 나스닥은 적자회사라도 잠재력을 인정받으면 얼마든지 상장할 수 있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라는 ‘대어’를 미국 증시에 빼앗길 상황이 되자 “성장 유망기업 육성을 위해 상장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공모 후 시가총액과 자기자본이 일정 수준 이상인 회사는 적자기업이더라도 상장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꿔 삼성바이오로직스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6년 상장 당시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던 금융당국이 2년 만에 말을 바꿨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의 입장이 계속 바뀌면서 기업과 투자자, 자본시장 모두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었다”며 “유망 기업이 한국에서 상장이나 사업을 꺼리게 되는 등의 후유증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