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車 '실적쇼크', 한국GM은 '적자 늪'…車산업 엔진이 식어간다
“자동차 및 부품업체의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은행들이 ‘비 올 때 우산 뺏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현장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고사(枯死) 위기에 내몰린 자동차 부품회사들에 대한 대출 회수를 자제해달라는 당부다. 부품사들은 올 들어 공장 가동률 하락과 자금난 등으로 폐업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올 들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맞물리며 1년 넘게 고전해온 완성차업계의 후유증이 이어진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車 '실적쇼크', 한국GM은 '적자 늪'…車산업 엔진이 식어간다
◆美·中 판매 부진에 환손실 직격탄

완성차업계의 위기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8000억원 중반대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9496억원)보다 10% 이상 낮다. 시장에선 오는 25일 실적발표에서 ‘어닝 쇼크’를 예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판매 부진에 시달린 데다 원화 강세와 주요 신흥국의 통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미국 시장에선 지난해 과잉 생산과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한때 4개월치나 쌓이며 후유증이 이어졌다. 올 들어서도 밀어내기 판매로 신차와 중고차 가격이 동반 하락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어쩔 수 없이 재고를 털기 위해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수익성이 나빠졌다는 설명이다.

중국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이어진 판매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중국에서 56만1152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48만9340대)보다 14.7% 늘었지만, 사드 보복 이전인 2016년과 비교하면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재고가 쌓이면서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차량 일부를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하는 ‘고육지책’까지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 강세와 브라질,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의 통화 약세에 따른 손실까지 겹쳤다. 3분기 원·루블과 원·헤알 환율은 각각 1.9%, 5.2% 떨어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탓에 신차 중심의 판매 회복세가 매출 및 수익성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벼랑 끝 내몰린 한국 車산업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기아자동차도 3분기에 최악의 실적을 낸 것으로 추정됐다. 쌍용자동차와 한국GM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는 지난해 653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상반기에도 387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수출 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올초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한국 철수설’에 시달렸던 한국GM은 올해 1조원 안팎의 적자를 볼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판매 부진에다 올 상반기 구조조정에 따른 희망퇴직금 지급 등 특별회계 손실까지 겹치면서다. 이 회사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후진’을 거듭한 지 오래다. 한국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 자리를 지켰지만 2016년 인도에 밀려 6위로 내려앉았다. 올 들어선 7위인 멕시코에도 뒤처졌다. 1~9월 한국의 누적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동기보다 8.4% 줄어든 289만9556대다. 같은 기간 멕시코는 295만3735대를 생산했다.

수출도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한국 자동차 수출액(26조5500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8% 감소했다. 5위(5.6%, 2013년)였던 세계 자동차 수출 시장 점유율 순위도 8위(4.6%)로 내려앉았다.

업계에선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곪아온 한국 자동차산업이 빈사지경에 내몰렸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8000여 곳에 달하는 부품사들은 ‘줄도산’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폭탄’ 위기와도 맞닥뜨렸다. 미국 정부가 수입 자동차 및 부품에 20~25%가량의 고율 관세를 매기면 미국 수출이 사실상 끊기면서 국내 자동차산업의 생태계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영연/장창민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