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200여만 명이 가입한 옛 실손보험에 대해 최대 12%의 인상을 사실상 허용한 것에 대해 보험업계는 안도하고 있다. 당초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라 실손보험료 인하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손해가 커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보험업계 주장을 정부가 수용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하지만 옛 실손보험의 보험료 인상률을 금융당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폭이 대폭 낮아질까 우려하고 있다.

◆손해율 높은 실손보험료 더 올라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은 3416만 명가량이다. 이 중 보험사가 약관을 통일한 2009년 10월 이전에 가입한 국민들은 1032만 명으로, 30.2%에 이른다. 2009년 10월부터 신(新)실손상품이 출시되기 직전인 지난해 3월까지 가입자 수는 2215만 명(64.8%)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중 가장 많다. 지난해 4월부터 출시된 신실손상품 가입자는 168만 명(4.9%)이다.
'문재인 케어' 효과로 新실손 가입자 168만명 보험료 내리지만… 기존 가입 3200만명은 실손보험료 더 내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실손보험의 손해율(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은 121.7%에 달한다. 통상 실손보험의 적정 손해율이 100%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신실손상품의 손해율은 지난해 말 기준 58.6%에 불과하다. 판매 초기인데다, 과거에 출시된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험사들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 적기 때문이다. 신실손상품은 특약 자기부담금을 최대 30%로 설정하고 3대 비급여 특약(도수치료, 비급여 MRI, 비급여 주사)은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는 실손상품별로 손해율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내년도 실손보험료 인상 및 인하폭을 책정했다. 우선 2009년 9월 이전에 출시된 실손보험 인상률은 8~12% 수준으로 정했다. 손해율 상승으로 인한 인상요인은 14~18%지만,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른 실손보험 인하요인(6.15%)을 감안한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판매된 표준화 상품의 보험료 인상률은 6~12%로 정했다. 인상요인(12~18%)에서 인하요인(6.15%)을 차감한 것이다. 다만 금융위는 이 인상폭엔 연령 증가분이 포함돼 있지 않아 보험사별로 실제 인상률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통상 보험사들은 5년 내지 10년 기점으로 보험료를 큰 폭으로 인상한다.

◆“정부도 실손보험료 인상 필요 인정”

보험업계에선 정부의 이날 발표에 대해 예상외라는 분위기다. 실손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부가 수용한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보험개발원 및 보험사가 올해 평균 실손보험료를 10% 안팎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청한 데 대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정부는 ‘문재인 케어’가 실손보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오면 이를 반영하라고 했다. 보험사는 2015년 보험료 자율화 원칙에 따라 2년 연속 보험료를 20%가량 올렸지만 지난해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라 올해 보험료를 동결했다.

한 보험사 임원은 “정부가 구체적인 보험료 인상폭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부도 실손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정부가 무작정 보험료 인상을 막는 건 시장 원리에 맞지 않다”며 “다만 각 보험사가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른 인하요인을 감안해 보험료를 책정하는지 철저히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에 따른 인하효과를 보험료에 반영하지 않는 보험사가 적발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방침이다.

강경민/서정환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