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본사 같은 건물을 국내에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투자 규모가 4000억원에 달한다. 이곳에서 3000여 명이 근무하며 자율주행 카트, 물류 자동화 로봇 등 첨단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직원 1000명가량은 지역 주민 우선 채용에 나선다. 아파트 30층 높이의 건물은 예술적으로 디자인해 지역 랜드마크로 조성할 작정이다. 신세계가 구상 중인 ‘하남 온라인 센터’ 얘기다.

정용진 부회장
정용진 부회장
하지만 이 계획은 주민 반대로 6개월째 공전 중이다. 물류 기능이 있다는 이유로 ‘물류 창고’ 취급을 받아서다. 물류 창고는 대형 화물트럭이 많이 오가 교통 체증을 유발하고 안전을 위협한다는 게 반대 측 논리다. 아마존 같은 첨단 정보기술(IT) 건물이 졸지에 혐오시설로 바뀐 것이다. ‘사실’과 ‘인식’ 사이의 괴리는 커 보인다. 반대 주민은 신세계의 상세 계획을 듣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실제 물류 창고인가

첨단 온라인 건물이 물류 창고로 바뀌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 채용박람회를 방문했을 때다. 기자들이 정 부회장을 에워쌌다. 경기 하남에 구입한 땅 용도를 묻는 말이 나왔다. 정 부회장은 “아마존을 능가하는 최첨단 온라인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답했다. “신세계의 온라인 심장부”란 표현도 썼다.

온라인의 ‘중심’을 의미하는 ‘센터’는 이후 ‘물류 센터’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 부회장의 발언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만 봐도 그렇다. 한 주민이 ‘이마트 대형 물류센터 건립 절대 반대합니다’고 썼다. 순식간에 수천 명이 동참했다. ‘이마트 물류센터 철회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설립됐다. 비대위는 “물류 창고를 들일 생각도 하지 말라”며 신세계와 각을 세웠다. 지난달 말 어렵게 마련된 간담회에선 신세계의 계획안을 보지도 않았다.

물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사업을 하면서 물류를 뺄 수는 없다. 아마존은 작년 9월 제2본사 설립 계획을 발표했을 때 미국 내 수백 개 도시가 유치 경쟁을 펼치자 ‘물류의 편의성’을 조건 중 하나로 내걸었다. 신세계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각 계열사 온라인몰을 합쳐 연내 ‘온라인 신세계’를 열기로 했다. 1조원 이상의 외부 투자도 받기로 한 상태다. 하남 온라인 센터는 이 신설 법인의 본사 건물로 쓰일 예정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하남 프로젝트' 6개월째 표류… 창고로 오해 받은 온라인 센터
교통난 가중 우려 진실은

비대위는 신세계 온라인 센터가 교통 혼잡을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지 인근 황산사거리, 상일IC 등은 상습 정체구역이어서 평소에도 혼잡하다.

하지만 온라인 센터가 들어설 자리 바로 옆에 짓고 있는 코스트코 설립 때는 이런 우려가 크지 않았다. 코스트코는 양재점을 비롯해 대부분의 점포 인근에서 극심한 교통난을 겪고 있다. 하루 교통량이 1만 대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세계는 온라인 센터에 물류 트럭만 하루 900대가량 오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루평균 4000~5000대 수준인 이마트 점포당 방문차량의 5분의 1 수준이다.

대형 트럭 탓에 위험하다는 인식도 사실과는 차이가 있다. 신세계는 온라인 센터에 다니는 물류 트럭 대부분을 1t 소형으로 할 예정이다. 1t 트럭은 소음과 분진도 대형 트럭에 비해 훨씬 적다. 신세계 관계자는 “주거지역을 우회하고 지하 주차장을 운영해 주민 불편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에는 어떤 영향 있나

집값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도 과장됐다는 게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물류 창고는 그동안 집값에 악영향을 준다고 알려졌다. 신세계 온라인 센터는 물류 창고가 아닐뿐더러 물류 기능이 있다 해도 기존 물류 창고와 완전히 다르다. 건물 외관은 하남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게 신세계 측 청사진이다. 건물 내부에도 첨단 시설을 갖추고 일부 공간을 주민에게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근무 인력 300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집 수요도 많아질 수 있다. 집값에 긍정적 요인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일자리 유발 효과도 있다. 신세계는 온라인 센터 근무 인력 중 1000여 명을 우선적으로 하남 지역 인재로 채우기로 했다. 세수 또한 연간 30억원에 이를 것이란 게 신세계 측 설명이다.

김상호 하남시장은 지난달 말 간담회에서 “주민 동의 없는 사업 추진은 안 된다”고 말했다. 신세계도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하면 다른 후보지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신세계 하남 프로젝트는 결국 하남 주민의 선택에 달렸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