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너무 우습게 봤다.”

지난주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들이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미·중 통상전쟁과 관련해 내린 평가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매년 7월 말부터 8월 중순 사이 중국 공산당 전·현직 최고 지도부가 베이징 동쪽 해안 휴양지 베이다이허에 모여 휴가를 겸해 국가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 회의의 핵심 주제는 미·중 통상전쟁 해결 방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순간 타협을 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끝까지 강공을 거듭하자 중국 지도부가 충격을 받았다는 관측이 나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성급하게 세계 패권에 도전했다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의 통상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중국 안팎에선 시 주석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시 주석이 중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과신한 나머지 미·중 통상 갈등을 촉발했고 이로 인해 중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너무 얕봤다"… 부메랑 돼 날아온 시진핑 '중국夢'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국 대외정책의 새로운 이정표로 ‘신형 국제관계’를 선언했다.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1990년 꺼내든 외교전략인 ‘도광양회(韜光養晦: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를 폐기하고 앞으론 중국이 국제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는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미국의 반발을 불러 통상전쟁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통상전쟁이 터졌을 때만 해도 중국은 “피하지 않겠다. 똑같이 보복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보복 카드가 마땅치 않은 데다 중국 경제가 더 큰 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든 통상전쟁을 막았어야 했다는 비판에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 내에선 “통상전쟁에서 중국은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며 “지금 중국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위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 드라이브에 중국 경제 곳곳에선 비상등이 켜졌다. 2분기 성장률은 6.7%로 1분기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하반기 성장률은 6.5%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증시와 위안화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17일 상하이종합지수는 2668.97로 마감하며 신저가를 새로 썼다. 상하이지수는 지난 1월 고점(3587.03) 이후 25%가량 폭락했다. 미국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최근 석 달 새 8% 가까이 급락했다.

실물경기도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까지 고정자산투자 증가율은 5.5%에 그쳐 중국 정부가 통계를 내놓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7월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증가율도 시장 전망치에 크게 못 미쳤다. 상반기 경상수지는 283억달러 적자로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기업들의 자금난도 심해지면서 채무 불이행(디폴트)이 급증하는 추세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중국에서 발생한 채권 디폴트는 321억위안(약 5조2600억원)으로 작년 전체 규모(365억위안)의 88%에 달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헌법 개정으로 장기집권을 꾀하는 시 주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성적표”라며 “통상전쟁으로 경제가 고꾸라지면 당장 시 주석의 1인 지배 체제까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내에선 미·중 통상전쟁으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국민의 분노가 분출되면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10년 전 불거졌던 ‘중국 붕괴론’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중국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부편집장을 지낸 덩위원(鄧聿文) 차하얼학회 연구원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무책임한 관료주의가 팽배한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닥치면 나라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무역전쟁이 ‘중국 붕괴’ 공포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