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사자’ 주문이 몰리며 주요 바이오주가 일제히 급등했다. 유입 자금의 정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탄력성이 좋은 주식을 저가 매수해 ‘단타를 치는’ 해외 헤지펀드가 들어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이 같은 외국인 자금 유입만으론 제약·바이오주의 추세적인 상승을 낙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메릴린치 창구로 쏟아진 '사자'… 바이오株 '들썩'
◆해외 헤지펀드의 타깃 가능성

17일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주요 헬스케어 종목으로 구성된 KRX헬스케어 지수는 109.45포인트(2.93%) 오른 3849.64에 마감했다. 코스닥시장 대장주인 셀트리온헬스케어(0.90%)를 비롯해 에이치엘비(11.45%) 신라젠(6.96%) 바이로메드(3.98%) 등 시가총액 상위 바이오주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외국인들이 주로 바이오주 매수에 나섰다. 외국인은 이날 신라젠(260억원)을 전체 증시 종목 중 가장 많이 순매수했다. 에이치엘비(232억원) 셀트리온(114억원) 등도 매수량이 많았다.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매수가 이뤄진 종목이 유독 많았다. 이날 메릴린치 창구에서 신라젠 30만1570주의 매수 계약이 체결됐다. 전체 외국계 창구 중 신라젠을 가장 많이 매수했다. 에이치엘비(24만811주) CMG제약(16만8661주) 셀트리온(9만3913주) 등도 이날 메릴린치 창구로 대거 매수세가 유입됐다. 메릴린치 창구는 대규모 자금을 활용해 짧은 주기로 매매하는 펀드가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수 주체에 대해선 증권업계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메릴린치 유입 자금이 한국 증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홍콩이나 싱가포르 헤지펀드 관련 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헤지펀드업계 관계자는 “알고리즘을 이용한 해외 퀀트 헤지펀드는 가격이 많이 떨어진 종목들을 대거 매수했다가 가격이 오르면 파는 ‘치고 빠지기’식 전략을 쓴다”며 “바이오주는 주가 민감도가 크고 오랫동안 조정을 받아왔기 때문에 타깃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시장의 특성을 잘 아는 투자 주체로, 한국계 투자자가 포함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목별로 투자 접근”

전문가들은 메릴린치 창구의 매수세만으로는 국내 바이오주의 추세적 반등을 예견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메릴린치 창구로 유입되는 자금은 단타 트레이딩 성격이 짙다”며 “제약·바이오주 주가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불확실성이 큰 제약·바이오주의 ‘깜깜이 투자’를 막기 위해 공시 의무를 강화한 것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2분기 이후 제약·바이오 종목들이 하락세를 보인 데는 연구개발(R&D) 자금의 회계처리를 두고 일었던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 무형자산으로 잡혔던 R&D 자금을 비용처리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바이오주의 실적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장 추세적 반등을 낙관하기보다는 바이오주 종목별로 기술 수출 등 강점을 분석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날 가격제한폭(29.97%)까지 오른 녹십자셀은 개발 중인 면역항암제 ‘이뮨셀-엘씨’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뇌종양(교모세포종)에 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다는 소식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기보고서를 마감일인 지난 14일까지 제출하지 못한 줄기세포 치료제 업체 차바이오텍은 이날 올 2분기 영업이익(개별 재무제표 기준)이 5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시하면서 5.96% 상승 마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