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여론조작 지시 혐의를 받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7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드루킹' 여론조작 지시 혐의를 받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17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경수 경남지사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운명의 날'이 밝았다.

김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는 17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김 지사는 이때 변호인단과 함께 출석하며 또 한 번 포토라인에 섰다. 특검은 댓글 조작을 공모한 업무 방해 혐의를 영장에 담았다.

김 지사는 이날 출석에 앞서 "이 사건이 불거진 이후부터 모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해왔다. 오늘도 변함없이 성실히 설명하고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킹크랩 목차 못 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법정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답했다. 김 지사는 '댓글 조작은 인지하지 못했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피의자심문이 열리는 319호 법정으로 이동했다.

이날 진행될 김 지사의 구속 전 영장실질심사는 결국 그가 댓글조작 프로그램 '킹크랩'의 시연을 봤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15일 법원에 제출한 8쪽짜리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김 지사가 2016년 11월 9일 저녁 드루킹이 운영한 경기도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2층 강의장에서 열린 '킹크랩 시연회'에 참석했다고 적시했다.

이 자리에서 킹크랩 프로토타입(초기 버전)의 구동을 지켜본 김 지사가 '드루킹'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으로 킹크랩 사용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처음 이같은 내용이 공개됐을 때만 해도 김 지사가 실제로 킹크랩 시연을 지켜봤다면 주위의 여러 회원들의 증언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혐의 소명이 비교적 쉽지 않을까 예상이 됐다.

하지만 대질 신문에서 '드루킹'은 말을 바꿔 "회원들을 나가게 하고 독대 자리에서 킹크랩을 설명했다"고 했다.

김 지사가 아니라고 하면 이를 입증할 증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킹크랩 시연회를 지켜본 김 지사가 100만원을 줬다는 드루킹의 진술 또한 번복됐다.

이렇듯 '드루킹'의 증언이 오락가락 하면서 그의 입에 의존했던 특검 또한 덩달아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검이 김 지사가 시연을 지켜봤다는 주장을 하게 된 핵심 증거 중 하나는 '드루킹' 일당이 시연회 날 작성한 '20161109 온라인정보보고'라는 MS 워드 파일이다.

파일에는 '드루킹'이 이끈 단체 '경인선'과 킹크랩 등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특검은 이 파일이 김 지사의 느릅나무 출판사 방문에 대비해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드루킹' 일당은 킹크랩 개발을 당일 새벽 끝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지사 방문 전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정황적 추론이 가능하다.

'드루킹'은 "당시 빔프로젝터로 파일을 출판사 강의장 벽에 띄운 뒤 김 지사에게 경인선과 킹크랩에 대해 브리핑했다"고 진술했다.

김 지사는 파일 앞부분의 경인선 소개를 본 기억이 있지만, '킹크랩'에 대한 부분은 보지 못했다고 특검에서 주장했다.

특검은 파일의 절반만 봤다는 김 지사 측 진술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정황적 추론일 뿐 물증은 없다.

특검은 '드루킹' 측의 시연회 준비 상황과 별도로 김 지사가 실제 시연회를 참관하거나 사용을 승인했다는 의혹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는 '드루킹' 일당의 진술 외에는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김 지사는 이 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드루킹' 일당 모두가 김 지사에게 킹크랩 시연을 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지만 모두 드루킹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특검 사무실 향하는 '서유기' (사진=연합뉴스)
특검 사무실 향하는 '서유기' (사진=연합뉴스)
'드루킹'의 증언이 오락가락하는데 반해 킹크랩 개발을 담당했던 공범 '서유기' 박모(31)씨의 증언은 비교적 일관되고 구체적인 상황이다.

특검 또한 이런 점에서 김 지사 앞에서 킹크랩을 직접 시연했다는 박 씨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해 영장청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수차례 소환조사에서 시연회 당시 상황에 대해 일관되고 자세한 설명을 내놓았다.

박 씨는 2016년부터 경공모 내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온 '드루킹' 최측근 중 한명이다. 경공모 자금원인 비누제조업체의 대표를 맡았고, 매크로 조작에도 가담한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됐다.

박 씨는 검찰에서 대선 넉 달 전인 지난해 1월부터 킹크랩을 이용해 댓글을 조작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킹크랩'이 고도로 발전된 2차 버전이 완성되면서 댓글 작업은 더욱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21일부터 '드루킹' 김 씨 등은 2196개 아이디를 동원해 5533개 기사에 달린 댓글 22만1729개에 총 1131만116개의 공감·비공감을 기계적으로 클릭했다.

19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같은해 4월 17일 오후 7시35분 박 씨가 인터넷에 올라온 <'장미대선' 불붙은 유세전…각 캠프별 전략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채팅방에 올리자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자유한국당 놈들 선거 때마다 서민 대표하는 게 습관이냐…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든 사람들 농락하고 다니네'(공감 837명)로 나온다. 이어 '장미대선이 아니고 촛불대선' 등의 댓글에 추천이 몰렸다.

10분 뒤 이 채팅방(31명 가입)에서 '경공모 둘리'라는 아이디가 또 다른 기사를 올렸다. <문재인 "광화문 대통령 시대 연다"…북악산·청와대, 시민들의 것>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댓글에선 '문재인!!' '좋아요 멋져부러요' '젊은 사람 연세 드신 분들 모두 문재인을 연호했어요' 등이 100~200회 공감 수를 얻었다.

'드루킹'은 <문재인, 광주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며 전국 순회 시작>이라는 기사를 올리면서는 "지원 부탁드린다"고 댓글 작업을 부탁했다.

이 기사에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비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드루킹(아이디 ‘tuna****’)도 "안철수의 젊은 정치, 강철수 이미지가 호남의 젊은 조폭들하고 손잡는 거였나?"라는 댓글을 직접 달았다.

이에 대해 경공모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당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가 지지율 상승을 보이며 문재인 후보와 양자 구도를 형성해 가던 때였다"며 "당시 경공모에서 ‘안철수 때리기’에 집중했던 증거"라고 전했다.

실제로 같은 날 네이버의 정치 댓글 많은 뉴스 5위(5300개)가 <文측 "安, 선거인단 '차떼기 밝혀야'…조폭 손 빌린 의혹도"> 였다. 이 기사 댓글에서도 경공모 회원들이 쓰는 아이디가 다수 발견됐다.

특검팀은 김 씨가 김 지사 등과 공모한 댓글 작업의 규모가 기존에 김 씨 등을 상대로 추가 기소된 댓글 작업 혐의의 규모보다 더 큰 것으로 파악했다. 앞서 특검팀은 김 씨 등에 대해 댓글 여론 조작 의심 행위 1000만여 건을 새롭게 확인해 재판에 넘겼다.

김 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던 못봤던 그의 조직적인 댓글조작에 여론이 휘둘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단순 지지자 중 한 명일 뿐이라던 드루킹의 가공할 여론조작 능력은 여러 정치인들과 손쉽게 커넥션을 맺는 도구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반향이 컸다.

법원은 이날 영장심사에서 특검과 김 지사의 주장을 모두 종합해 심리한 뒤 김 지사의 구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구속 여부에 따라 김 지사의 운명은 물론, 특검 수사기간 연장 여부도 판가름 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