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가운데)이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가운데)이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자력발전 이용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원전 비중도 ‘확대·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줄여야 한다’는 쪽의 두 배를 넘었다. 폭염에 따른 전력수급 위기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논란 등으로 탈(脫)원전 정책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주목된다.

한국원자력학회는 16일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는 원자력학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7일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전기 생산 수단으로 원전을 이용하는 데 찬성한 비율은 71.6%로 반대(26.0%)보다 훨씬 높았다. 원전 비중에 대해서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37.7%로 가장 높았다. ‘현행 원전 비중 유지’가 31.6%로 뒤를 이었고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은 28.9%에 그쳤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정부의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못한다’고 답한 비율이 50.1%로 ‘잘한다’는 응답률(45.5%)보다 많았다. 원전 안전성을 묻는 항목에는 ‘안전하다’는 응답이 55.5%를 차지했고, ‘안전하지 않다’는 비율은 40.7%였다.

국민 72% "原電 찬성"
장기적으로 원자력발전 비중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탈(脫)원전 정책에 대한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정부는 “에너지전환정책은 장기간에 걸쳐 원전 비중을 줄이는 계획으로 당장 이번 정부에서 원전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는 의견을 고수해왔다.

“국민, LNG·석탄보다 원전”

한국원자력학회와 에너지 관련 전공 교수 200여 명으로 구성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 과학기술포럼 등 에너지 전문가들은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들은 액화천연가스(LNG)·석탄발전보다 원자력발전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학노 원자력학회 회장은 “선호 발전원을 꼽으라는 질문에 태양광발전이라는 응답이 44.9%였고 원자력이 29.9%로 뒤를 이었다”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원전 비중을 축소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 대폭 비중을 늘리고 있는 LNG발전을 선호하는 응답자 비율은 12.8%, 석탄은 1.7%에 불과했다.
국민 72% "原電 찬성"
기존 여론조사와 상반된 결과 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 원전을 대체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자력학회는 여론조사 배경으로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가 서로 상반돼 국민 인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탈원전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탈원전에 찬성하도록 ‘편향된 질문’을 던졌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시행한 여론조사다. 현경원은 “국민의 84.6%가 에너지전환정책을 지지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설문지에 전기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등 원전의 장점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조사원이 원전사고 위험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등 질문이 공정하지 않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번 여론조사를 설계한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리서치 측은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최대한 중립적으로 설문지를 설계했다”고 밝혔다. 원전의 장점과 사고 위험을 설명하는 문항을 3개씩 배치하는 등 원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탈원전 때문에 에너지대계 위태”

이날 전문가들은 대정부 질의 형식으로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정책으로 전기요금을 2030년까지 10.9%만 올리고, 그마저도 이번 정권 중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한국전력이 올해 1조1690억원 적자를 내는 등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 전문가들은 △8차 전력수급계획이 지난 7개월 동안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해 예측치(1.9%)보다 훨씬 늘어난 점 △작년 원자력 발전량이 줄고 석탄 발전량은 급증해 온실가스 약 2000만t이 추가 발생한 점 △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하면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숙의가 없었다는 점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절차 등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점 등을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았다.

문 대통령 “충분히 신중하게 가는 중”

탈원전 과속 논란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오찬 회동에서 “충분히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고 있다”며 “탈원전이란 표현도 적절치 않고 에너지전환정책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월성 원전은 워낙 노후한 것이라서 폐쇄하지만 신고리 원전은 3개를 신축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춰보면 급격하게 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원전 비중을 점차 조정해나가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 보급하는 쪽으로 신중하게 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